■ "면죄부 이의" 젊은 신학자의 외침… '초심으로 돌아가라' 메아리로
한국의 개신교계는 시끄럽다. 끊이지 않는 비리와 다툼,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 행동으로 비판을 받더니 최근에는 이슬람채권법을 둘러싸고 낙선 운동론과 대통령 하야론까지 나와 지나친 정치 개입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교회의 세속주의 물량주의 기복신앙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풍경도 아름답지 않다.
이 모든 소란의 한복판에서 약 500년 전 유럽을 뒤흔든 종교개혁을 생각한다. 개신교가 거기서 출발한 만큼 이는 초심으로 돌아가 오늘을 삼가고 내일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유럽 종교개혁 발상지를 돌아봤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 체코의 얀 후스, 스위스의 장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 등 그 길에서 만난 종교개혁자들의 자취를 두 번에 나눠 소개한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작센공국의 비텐베르크궁정교회 문에 대자보가 붙었다. 비텐베르크대의 젊은 신학 교수 루터가 면죄부에 대해 학문적 토론을 해 보자며 라틴어로 써 붙인 95개의 논제다. 교회에 맞서려던 건 아니었는데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루터의 논제는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분에 유럽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져 나가면서 폭발적 공감을 일으켰다. 교회의 타락과 부패에 진저리를 치던 농민 등 민중과, 교회가 세속 권력까지 간섭하는 게 불만인 귀족과 제후들에게 그것은 도화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구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비텐베르크는 종교개혁의 출발지나 다름없다. 이곳 궁정교회 출입문 위 벽화에는 예수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 루터, 오른쪽에 루터의 종교개혁 조력자였던 고전학자 필립 멜랑히톤이 그려져 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의 무덤과 석상, 그림이 있다. 은퇴 목사인 자원봉사자 베른하르트 그룰(75)씨에 따르면 매년 20만명 이상이 이 교회를 찾아온다고 한다.
궁정교회에서 가까운 루터거리에 특별한 참나무 한 그루가 있다. 1520년 12월 10일 95개 논제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는 교황의 문서를 루터는 그 나무 앞에서 만인이 보는 가운데 태워 버렸다. 사제서품을 받은 얌전한 신학 교수가 부패한 교회에 맞서 개혁가로 돌아선 것이다.
멜랑히톤의 집, 루터의 집도 근처에 있다. 멜랑히톤의 집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박물관으로 만드는 공사 중이다. 루터의 집은 현재 박물관이다. 면죄부, 면죄부 돈 상자, 루터의 유물 등 여러 전시품 가운데 비텐베르크 궁정화가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가 인상적이다. 특이하게도 예수가 눈을 뜬 채 관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속옷자락도 바람에 펄럭인다. 살아 있다는 표시다. 십자가에 못박힌 채 살아 있는 예수의 그 눈길 아래 서면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숙연해진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묻는 듯 하다. ‘지금 우리는 바르게 깨어 있는가, 교회는 올바르게 살아 있는가’라고.
루터는 파문됐다. 정신적 죽음이나 마찬가지인 파문에 이어 1521년 보름스칙령에 따라 시민으로서 법적 보호마저 박탈당했다. 종교개혁의 신학과 교회 개혁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이 된 루터는 기사로 변장한 채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성에 숨어 지내면서 라틴어로만 돼 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성 내 루터의 방에 있는 의자와 책상은 아무 장식 없이 극히 투박하다. 책상 위에는 성경이 펼쳐져 있다. 책상 앞 벽에 걸린, 기사로 변장한 루터의 초상은 많이 마른 모습이다. 전도유망한 학자이자 사제이던 그가 교회와 사회 양쪽에서 추방당한 채 알 수 없는 운명의 격랑 앞에서 신의 뜻을 묻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종교개혁은 중세 교회의 억압으로부터 유럽을 해방시켰다. 그로 인해 교회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와 정치가 모두 변했다. 그 과정에는 혼란과 피가 있었다. 구교와 신교의 종교전쟁, 양 진영으로 갈라진 제후들의 대결, 신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종교개혁에 자극받아 봉기한 농민전쟁 등이 따랐다.
이번 여정에 동행한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슈발바흐성령교회 신국일 목사는 “종교개혁의 핵심은 종교 본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성서로, 믿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종교개혁의 현재적 의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한국 교회가 답할 차례다. 개혁, 곧 거듭남은 루터 당대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야 할 과제기 때문이다.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반성은 영원히 현재진행형이므로.
비텐베르크ㆍ아이제나흐(독일)=글ㆍ사진 오미환기자
■ 종교와 종교 울타리를 넘어…
가톨릭 재단이 불교 재단의 사회복지사업을 지원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잇는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이사장 염수정 주교)은 조계종사회복지재단(대표이사 자승 스님)이 펼치는'청소년 꿈 찾기 의지 나눔' 사업에 3,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불교 재단 사업에 가톨릭 재단이 지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바보의나눔은 조계종 의지 나눔 사업의 자원봉사 활동과 템플스테이로 진행되는 청소년 캠프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어서 종교 간 화합의 좋은 보기가 될 것 같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의지 나눔 사업은 전문직 봉사자들이 청소년들을 만나 자신의 경험을 나눠 줌으로써 희망을 북돋아 주는 직업 체험 프로그램이다. 2007년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작해 지금은 한부모, 조손가정 청소년도 포함시켜 더 많은 청소년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60여 직종 봉사자들과 1,500여명의 청소년이 만났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청소년들 스스로 꿈을 찾도록 이끄는 것이 이 사업의 특징이다.
바보의나눔은 종교나 인종을 떠나 다양한 분야의 사회복지 사업을 지원하는 모금 전문 재단이다. 지난해 2월 설립 이후 12월까지 모금한 8억8,981만원 중 7억985만원을 28개 사업에 지원하기로 했다. 전국의 사회복지단체에서 지원해 달라고 신청한 164개 사업 중에서 선정했다.
이 가운데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 지원하는 3,000만원은 국내 소외계층 지원에 쓰는 3억원의 일부다. 나머지는 몽골 등 해외 3개 지역 원조에 2억원, 복지시설 종사자 교육에 1억원, 에이즈 환자 지원에 1억원이다. 미혼모나 다문화가정 지원 등 특정 사업에 써 달라는 기탁금까지 합치면 전체 모금액의 92.7%인 8억2,455만원을 배분한다. 재단 운영비와 인건비를 최소로 줄여 최대한 많이 나눌 수 있게 한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종교개혁 500주년 국제 프로젝트 Refo500
Refo500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는 국제 프로젝트다. Refo는 ‘Reformation’(종교개혁)의 약자다. 학술 행사와 출판, 전시회, 음악회, 종교개혁지 순례 여행 등 여러 형태로 500주년을 기념한다. 2017년에 다가갈수록 독일 내 마르틴 루터의 자취 등을 찾아가는 종교개혁 순례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Refo500은 종교개혁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갱신과 변화의 운동으로 본다.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현재적 의미를 짚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갱신과 변화라는 큰 틀 안에서 집중 검토할 주제는 가르침과 배움, 돈과 권력, 교조주의와 교회, 자유와 핍박, 삶과 죽음, 문화와 예술, 성경과 언어 등 9가지다.
Refo500은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 기구 대표들도 참여하는 신ㆍ구교 연합 운동이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시작돼 국제 프로젝트로 커졌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스칸디나비아 스위스 북미가 함께한다. 루터의 나라, 독일이 가장 적극적이다. 영국과 네덜란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각국의 대학 문화기구 언론 등 40여개 기관이,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참여하고 있다. Refo500을 준비하는 첫 한국 대회는 1월 17일 총신대에서 열렸다. 아시아칼뱅학회의 11차 대회를 겸한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종교개혁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 개최, 교회와 신학교에서 종교개혁을 가르칠 교재 개발에 대해 논의했다.
Refo500에 대한 좀더 자세한 정보와 새 소식은 공식 웹 사이트(www.refo500.nl)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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