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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대놓고 수업하는 곳은 없지만 10시 넘자 셔터 내리고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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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대놓고 수업하는 곳은 없지만 10시 넘자 셔터 내리고 '보충'

입력
2011.03.09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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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형학원 밀집지역. 인도로 수백명의 초ㆍ중ㆍ고생이 쏟아져 나왔다. 학부모 자가용 승용차와 학원 통학버스 등에 몸을 실은 학생들은 곧바로 썰물처럼 사라졌다. 간판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단속반이 처음 방문한 D보습학원 역시 3~5층 강의실의 불은 모두 꺼져있었고, 학생들은 모두 돌려보낸 상태였다. 인근 J어학원에서 영어수업을 듣는다는 서일중 1학년 매모(14)양은 "시간제한이 없으면 쪽지시험에서 점수가 낮을 때 보충학습을 할 수도 있는데, 항상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있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단속전쟁은 이제부터였다. 시계가 밤 10시20분을 가리키자 단속반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두 번째로 들이닥친 S수학학원 강의실에서는 한 남고생이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이 학원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밤 10시 이후 수업을 운영하다 이미 두 차례 총 30점의 벌점을 받았다. 벌점 31점부터는 영업정지라 원장의 낯이 흙빛으로 변했다.

"수업한 것 절대 아닙니다. 모르는 것 있다고 남아서 공부하겠다고 해서 불만 안 끈 것이지."(원장)

"심야 자습도 금지돼 있습니다."(단속반)

"그런걸 언제 말했어요. 딱 한 명 있었고, 돈 받은 것도 아닌데."(원장)

"일대일 교습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자습도 금지되는 것 아시잖아요."(단속반)

20여분째 실랑이가 끝날 줄 모른다. 10시 이후 교습ㆍ자습을 한 학원은 1차 10점, 2차 20점의 벌점을 받는다. 벌점 31~35점은 영업정지 7일, 36~40점은 14일, 66점이 넘으면 등록이 말소된다. 필사적으로 항의하는 원장에게 "벌점 20점의 행정처분 사항이며 소명기회가 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누적 벌점 50점은 영업정지 45일에 해당한다.

이번엔 C논술학원. 3명의 학생이 가장 구석진 강의실에 불을 켠 채 논술답안지를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외우기라도 한 듯 "원래 10시까지 써야 하는데 아직 못한 것 뿐"이라고 항변했다. 강사가 헐레벌떡 달려와 "독서실 가야 하는 아이들인데, 잠깐 앉아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고 비슷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역시 벌점 20점.

또 다른 M보습학원에서도 남아있던 학생들이 적발됐다. 기자가 2시간 동안 방문한 7개 학원 중 적발 된 곳이 3군데나 되는 셈.

학생들도 할말은 많았다. 과외교습을 하는 학생에게 뒤쳐질 수 없다는 것. 이날 만난 경기여고 3학년 이모(18)양은 "대 놓고 수업하는 학원은 없지만 10시 넘으면 창문, 계단 셔터 닫고, 엘리베이터 차단 한 뒤 보충수업 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어차피 우리도 수업이 절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도 많다"고 했다. 또 "단속을 피해 강사가 인근 독서실 등으로 자리를 옮겨 소규모 교습을 해주기도 한다"며 "억지로 학원 문만 닫는다고 집에 가서 푹 잘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C논술학원에서 만난 한 학생은 "해야 할 공부는 산더미 같은데 무조건 단속만 하면 다냐"며 "학교에서 자습해도 벌점 매길 거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단속반도 녹초가 됐다. 이철웅 강남교육청 주무관은 "벌점자체 보다는 학생 건강권을 무시하고 심야 교습을 하면 교육청으로부터 강한 처분을 받는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단속의 의미가 있다"며 "심야교습을 막으려면 직접 발로 많이 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례를 통해 학원 교습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한 곳은 현재 서울 경기 광주 대구 등이다. 이들 시도의 학원가는 매일 밤 10시만 되면 불이 꺼진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단속반과 학원의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2008년에 조례가 통과된 서울의 경우 2009~2010년 불법 영업으로 경고 등 행정처분을 받은 학원이 강남ㆍ서초구 218곳, 송파ㆍ강동구 125곳, 강서ㆍ양천구 134곳, 도봉ㆍ노원구 122곳에 이른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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