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료로 오래 재직한 필자는 반시장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시장 맹신주의자는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친기업주의자에 속한다.
최근 대ㆍ중소기업 의 동반성장, 특히 ‘이익공유제’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혹시 일부 대기업이 중소 협력기업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감히 국가 경제를 일으킨 우리를 동반성장의 잣대로 평가해?”라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대기업의 막대한 초과이윤을 바라보는 수많은 협력기업들의 복잡한 마음, 스스로를 ‘마당쇠’라고 자조하는 그들의 심사를 대기업이 얼마나 이해할까 싶다.
‘반시장적’ 비난은 잘못
동반성장은 오래도록 ‘상생’이라는 추상적 개념, 선언적 법 조항으로 남아 있다가 최근 ‘지속가능 성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새롭게 국가경제 어젠다로 부상하였다. 여기에 동반성장위원회가 ‘동반성장지수’ 추진계획을 통해 강한 실천의지를 밝혀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 가장 뜨거운 핵심이 이익 공유제이다.
반대론자들은 이익공유 개념을 반시장적이라고 매도한다. 공정은 곧 완전경쟁이라는 시장 맹신적 시각에서, 이익공유는 대기업이 정당하게 번 이익을 부당하게 협력기업에 빼앗기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들은 나아가 동반성장 자체에 회의적이다. 정글의 법칙, 계약자유의 원칙에 집착하고 국가 의 산업정책이나 공정거래 정책에 냉소를 보낸다.
반대론의 논거는 첫째, 글로벌 소싱의 대세에 역행하면서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대ㆍ중소기업의 지속적 협력관계가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득이 된다는 소박한 진실과 일부 대기업의 성공사례를 애써 외면한다. 둘째, 수많은 협력기업의 기여도 평가와 이익 배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의지가 있다면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대기업의 협력기업 지원은 궁극적으로 대기업 자신을 위한 것이지 결코 중소기업에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공유할 이익은 상당한 초과이윤의 발생을 전제로 한다. 대기업의 적자 때 협력기업의 ‘마이너스 기여’를 상정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넌센스다.
원칙적으로는 이익공유라는 사후적 방법보다는 협력기업에 적정이윤을 사전에 보장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단기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최저 납품단가에 집착하기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협력기업의 시설투자와 기술개발, 우수인력 확보를 위한 적정이윤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사후적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온 것은 이런 사전적 적정이윤 보장과는 거리 먼 현실 때문이다. 대기업이 그 ‘불편한 진실’에 눈 감은 채 이익공유제를 반시장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반성장 반드시 이뤄야
동반성장은 우리 경제가 선진경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뤄야 할 필수과제이다. 대ㆍ중소기업의 양극화가 갈수록 확대되는 기업 생태계는 곧 ‘시장의 실패’를 뜻한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정부는 세제, 금융, 공장부지 배려 등 구체적이고 과감한 동반성장지수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제도의 공신력과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익공유제를 무조건 반대하는 이들은 이제 그만 ‘저주의 굿판’을 걷고 이익의 ‘정당한 공유’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바란다. 이를 토대로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적극 호응, 후진적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선진 경제를 뿌리내리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 것이 함께 잘 사는 경제를 이루는 길이다.
한영수 경기 공업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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