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등장은 환호성과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이패드 2 발표회장에서 애플의 신제품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였다.
잡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2004년 이후 세번째 병가 중이었기에 그의 깜짝 등장은 만인의 화제였다. 미 주간지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보도한 ‘6주 시한부설’만큼은 아니더라도 첫 병가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리라고 낙관할 상황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수척했지만 독설과 자신감은 여느 때 못지않았다. 노골적으로 삼성 HP 모토로라 등 경쟁사들이 아이패드 2를 베끼는데 급급할 것이라며 “올해도 복제품(copycats)의 해가 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틀린 수치와 사실을 애플에 유리하게 발표해 경제지 포춘이 조목조목 그를 비난하기도 했다. 거짓조차 진실처럼 믿게 만든다고 해서 ‘잡스의 현실왜곡장(Jobs’ 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고 불리는 그의 과도한 자기확신과 카리스마는 건재했다.
악명 높은 잡스의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암 치료 중에도 전혀 바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인생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생각하게 됐다.
사실상 잡스의 신화는 쓰라린 실패의 경험으로 강렬하게 빛났다. 그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제 손으로 영입한 CEO 존 스컬리로부터 쫓겨나는 기상천외한 실패를 겪었다. 어쩌면 잡스는 탄생부터 실패였는지 모른다. 친부모는 혼전의 학생이라는 이유로 아들을 입양시켰다. 애초에 입양 예정이었던 변호사 부부가 딸을 원하는 바람에 잡스는 못 배우고 넉넉지 못한 양부모를 만났다. 학비가 비싸 대학도 고작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실패라고 할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다.
잡스 자신에게 죽음의 무게가 호사가들의 구구한 예측에 비할까. 잡스는 췌장암 수술 후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죽음 앞에선 외부의 기대나 실패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는다”며 “가슴을 따라 살라”고 말했다. 이제 잡스는 여전한 독설과 자만을 드러내며 여전히 일을 사랑하고 인생을 즐기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가 대중 앞에 선 이유가 건강을 과시하고 애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때로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믿음을 잃지 말라던 자신의 연설을 고스란히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패의 고비마다 잡스가 추구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열정과 몰입이었다. 개인용 컴퓨터(PC)를 상상조차 못할 시절에 그는 집집마다 PC가 놓여질 미래를 확신했다. 그 비전과 열정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부업 장소였던 차고에 들어차고 앉아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이 가능했다. 쫓겨난 애플로 돌아와 시가총액 2위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걸 해서 뭘 하려고’를 묻기 전에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밥그릇 챙기기 위해 집단행동을 하는 사법연수원생에게 정말 어리석은(foolish) 일일 것이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갈망하는(hungry) 시간이 곧 행복의 원천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러나 스탠포드대 졸업생에게 던진 잡스의 메시지(Stay foolish, stay hungry)가 의미심장해진 순간 성공은 인생의 부산물이 된다.
김희원 국제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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