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영화 를 보면서 쌓여가던 감동이 눈물로 터졌던 장면은 어디였던가. 브라스밴드 단원이 된 톤즈 마을 아이들이 '사랑해 당신을'이란 노래를 연주하며 흐느끼는 대목이었던 듯싶다. "예수님이라면 이 곳에 교회보다 학교를 먼저 세우셨을 것"이란 그의 말도 감명이 컸다. 나환자 마을을 찾아 문드러진 발에 맞춰 신발을 만들어 주는 모습도 그랬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음악을 심지 않았다면…. 그가 가르친 것은 음악이었지만 아이들이 받은 것은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용기를 낳고, 그 용기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 영어'The System'의미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ㆍ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의 줄임말이다. 1975년 아마추어 오르간 연주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é Antonio Abreu)가 수도 카라카스 변두리 낡은 지하 주차장에 버림받은 11명의 아이들을 모아 총과 마약에 익숙한 손에 악기를 쥐어 주었다. 아브레우 씨는 "연주 실력을 늘리기 보다 행복을 심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지하 주차장을 나서는 아이들에겐 외로움 슬픔 절망 대신 협동심 환희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 현재 '엘 시스테마'엔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35만 명의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모토인 'To play and to fight'는 '완벽 연주를 위한 노력, 꿈의 실현을 위한 인내'라는 의미라고 한다. 빈민가 출신의 세계적 연주자를 수없이 배출했음은 물론이고, 문화적 혁명을 이뤄내고 사회적 복지형태로 확산됐다. 시청각 장애아나 교도소 재소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들은 문제아동 심리치유와 범죄인 재활교육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아예 국가 복지정책으로 수용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아브레우 씨는 지난해 제10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했다.
■ 한국판 '엘 시스테마'가 시도된다. 교과부와 문화부가 전국 낙후지역 65개 초ㆍ중ㆍ고교에서 저소득층을 우선 대상으로 '학생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 음악이 사랑과 용기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서양에선 만고의 진리이며, 동양이라고 다르지 않다. 공자말씀(논어)에도 인간이 갖춰야 할 6가지 자질 가운데 예절(禮)과 음악(樂)을 첫째와 둘째에 놓아, 무술(射ㆍ御)이나 학문(書ㆍ數)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부족한 예산이지만 알뜰히 사용하고, 갈수록 확대하여, 우리도 국가 차원의 청소년 사회복지제도로 자리잡게 하면 좋겠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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