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설겠으나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마당 한쪽에 펌프가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땐 바짝 말라있는 펌프는 한 바가지의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 차고 맑은 지하수로 응답해왔다.
마중물은 메마른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을 의미하는 말로 '물의 길을 마중 나가는 물'을 뜻한다. 사실 펌프에 마중물을 부어 지하수를 끌어올리던 그때는 마중물의 가치를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시골에서조차 쉽게 펌프를 찾아볼 수 없는 요즘, 문득 마중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지하의 물길을 마중 나가 마침내 큰 물줄기인 대통물을 이끌어내듯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마중물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대통물을 불러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대통물이 반응하는 순간 조용히 그 안에 섞여 굳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배워야 한다.
요즘 방송이나 기업할 것 없이 소수 스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한 사람의 스타 플레이어를 집중 육성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에 따른 파장 효과를 챙기는 것은 언뜻 쉬워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이것만큼 위험한 투자는 없다.
방송이든 기업이든 결국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훨씬 건설적인 미래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다소 진부하지만 개인보다는 팀, 팀보다는 구성원 전체가 고루 역량을 발휘해야 건강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자면 직책에 상관없이 마중물을 붓는 마음으로 부하직원, 상사, 동료의 가능성을 열어주려는 배려가 수반되어야 한다. 고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투자를 권유하기보다는 가족을 마중 나가는 심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 마침내 신뢰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질의 지하수가 아무리 풍부하다고 한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없으면 퍼 올릴 수 없듯, 상대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 없으면 진정한 관계 형성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경쟁과 이기주의에 물든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호출해내는 마중물. 그 작지만 알찬 힘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최경수 현대증권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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