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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썰렁했던 국기 게양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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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썰렁했던 국기 게양 유감

입력
2011.03.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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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 아침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맞은 편 아파트를 바라다보니 태극기를 단 집이 90여 가구 중에 네 다섯 정도 보였다. 달지 않은 집에서는 국기를 게양하는 줄 몰라서 못 다는 것은 아닐 터. 알고는 있어도 달아야겠다는 의식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이다. 나라를 빼앗겨 되찾기 위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 많은 선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항거하던 모습이나 한국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고귀한 생명을 태극기 소지 여부로 구하기도 했던 태극기의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 서울을 수복하여 태극기를 중앙청 건물에 달던 감격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었다.

태극기가 각종 국제 행사를 치르는 현장에서나 보여주고 스포츠 대회에서 응원을 하거나 금메달을 획득하여 애국가와 함께 기쁨을 만끽할 때만 하나의 도구로 필요한 것일까 묻고 싶다. 이대로 그냥 좌시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요즘 국경일은 휴일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초점을 맞출 뿐 아무런 의미도 부여되지 못한 채 보내는 실정이다. 태극기가 집에 없거나 있어도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나마 게양을 고집스럽게 하는 세대가 전쟁을 겪은 노년인 것은 누구보다도 국기에 대한 절박한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서였다.

어릴 적엔 국기 게양과 하강 시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리를 지나치다가도 그 자리에 서서 했다. 그 자체의 행동에 대해서 누구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정부시책에 따른 군국주의의 유물로 사라지게 된 이후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 중에는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싫은 사람이나 싫은 나라에 의한 것이면 무조건 없애버리는 습성이 있다. 그 일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가리지 않고 거부하고 만다. 게양에 관한 문제만 해도 손바닥을 뒤집듯 없애기 이전에 점차적으로 변화를 추구했어야 했다.

언젠가 대전에 한 아파트에서 국경일이었던 그날 창 밖을 내다보니 그 아파트 동 거의 모든 가구가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반가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여쭈어봤더니 동내반장을 하는 아줌마가 태극기를 사서 나누어 주고 게양을 하라는 홍보를 했던 것이다. 순수한 관심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태극기 게양은 행사가 있을 때나 국민의례라는 순서에 끼어 시행되는 국기에 대한 예절로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장식으로만 걸려있는 태극기라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구심점이 없어 국력이 모아지지 않는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정할 수 없으면 태극기가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신격화 하여 종교 개념으로 세워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국경일만이라도 소시민적인 일상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발판으로 새롭게 마음을 다져보는 날로 승화시키는데 일익을 맡아주어야 했다. 형식적으로 태극기를 달아도 말아도 관계하지 않는다면 일반 가정에서의 게양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나라사랑 교육의 일환으로 절실하고도 분명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시점이다.

윤제철 시인ㆍ서울교원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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