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엄마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15년 전 충북 제천으로 시집 온 필리핀 출신의 알진 에로호(38)씨는 요즘 가슴 한 가득 뿌듯함을 느낀다. 제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결혼이주 여성 14명과 함께 동화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각자 모국의 전래 동화나 민담을 묶어 만든 책 이름은 . 60쪽짜리 올 컬러판 책에는 베트남, 중국, 필리핀, 일본 등 7개 국의 아름다운 동화가 실려있다.
필리핀 민담 '쌀의 전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삽화까지 직접 그려 넣은 에로호씨는 "필리핀 말을 모르는 우리 아이들(13세 딸과 8세 아들)이 책을 보고 엄마 나라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동화책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것은 지난해 7월. 중국 출신의 강향순(33)씨가 "각 나라의 동화를 번역해 책을 만들어 읽어주면 아이들이 엄마의 고향을 좀더 이해할 수 있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문화에 좀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먼저 동화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각국의 대표적인 전래 민담이나 동화를 추린 뒤 그 중에서 한국 정서와 맞고 교훈이 있는 것을 골랐다. 최종 선정 때는 아이들의 의견도 참고했다. 착한 사람에게 새가 금을 물어다 주는 내용으로 한국의 '흥부전'과 비슷한 베트남의 '별나무'는 아이들의 만장 일치로 선택을 받았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삽화 그리기였다.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투박한 그림은 색종이 접어 붙이기, 스크래치 등 다양한 표현 기법으로 보완했다. 15명의 공동작업은 남편들의 적극적인 응원 속에 8개월 동안 이어져 세상에 하나 뿐인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큼지막한 그림에 먼저 각 나라의 언어로 글을 쓴 뒤, 그 아래에 우리글로 번역을 했다. 회원들은 100권을 제천시내 어린이 도서관과 초등학교 등에 우선 배포하기로 했다.
베트남 출신의 누엔티미눙(25)씨는 "아들 동현이가 나중에 글을 읽을 수 있을 때 엄마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할지, 생각만해도 뿌듯하다"며 "책은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다문화교육을 할 때 이 동화책을 읽어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미정(50)센터장은 " 전문 번역가들이 아니라 문맥상 조금 어색한 곳도 있겠지만 책자를 만든 이주여성과 그 가족들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됐을 것"이라며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엄마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도록 하는 작은 불씨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천=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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