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에 중독된 한 걸인에게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 수면제 졸피뎀 3만여정을 1년8개월 동안 처방해준 의사 55명과 이를 조제해준 약사 13명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졸피뎀 복용 기준이 하루 최대 2정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41년 간 복용할 양을 처방ㆍ조제해준 셈이다.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의 허점, 의ㆍ약사의 윤리 부재가 빚어낸 일이다.
3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구걸로 생활해온 이모(33)씨는 서울과 경기 안산시, 시흥시 등 수도권 일대의 병원과 약국을 돌며 졸피뎀을 처방ㆍ조제 받아 하루 평균 5~6차례씩 무려 70~120정을 종합감기약과 함께 복용했다. 경찰 조사결과 한 병원 의사는 이씨에게 한꺼번에 600정의 졸피뎀을 처방해주면서 "치사량이다. 병원 원장이 알면 질책을 들을 수 있으니 건강보험이 아닌 본인 부담으로 가져가라"고 권유했고, 또다른 의사는 이씨의 누나 명의로 다량을 처방해주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식약청은 지난해 4월까지 졸피뎀 1회 처방을 하루 2정, 4주 기준 56정만 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이후부터는 4주 30정으로 관리 기준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씨가 받아온 처방전으로 이 약을 조제해준 약사들 가운데 노모(47)씨는 이씨가 여러 병원에서 같은 처방전을 받아오는 사실을 알고도 총 81회에 걸쳐 6,900정을 내줬다. 노씨는 한 달에 10차례, 하루 두 번씩 약을 지어주기도 했다. 일부 의사들은 경찰에서 "이씨 몸에서 냄새가 나 다른 환자에게 방해가 됐다. 환자가 밀려 어쩔 수 없이 처방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대문 쪽방촌에 거주해온 이씨는 지하철 앵벌이를 통해 하루 3만~4만원씩 번 돈으로 약값을 충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가 쓴 약값만 8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약을 대량으로 복용, 환각 상태에서 구걸 행위를 해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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