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지역을 장악해 내전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생존 전략이 분명해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동부 유전도시 브레가에 대한 카다피 친위부대의 기습 공격은 향후 리비아 내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지를 잘 보여준다. 카다피는 최근 들어 수도 트리폴리 사수에 치중했던 방어적 입장에서 벗어나 전투기와 용병을 동원, 대대적인 공세로 전략을 바꿨다.
눈에 띄는 점은 카다피 정권의 공격 타깃이 대부분 정유시설과 원유수출항이 밀집된 지역이라는 것. 트리폴리에서 740㎞ 떨어진 브레가는 반정부 세력의 거점인 벵가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 설비와 공항, 정유공장, 유조선 정박시설 등을 모두 갖춘 전략적 요충지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탈출하기 전에는 하루 9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비록 반정부 시위대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브레가 탈환 시도는 무위에 그쳤지만 카다피 친위부대는 석유시설을 목표로 한 공격 패턴을 반복해 왔다. 전날 아즈다비야에 대한 공중 폭격도 원유수출항을 되찾기 위한 목적이 컸다. 외신들에 따르면 친정부군은 카다피의 고향인 중부 시르테에서 시작해 지중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점차 반격 범위를 늘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리비아의 주요 원유수출 터미널 가운데 하나인 라스 라누프는 이미 카다피 측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말도 들린다.
동부 유전지대뿐 아니다. 지난달 27일 카다피 친위부대는 반정부 세력이 점령한 트리폴리 인근 자위야에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자위야는 트리폴리의 관문이기도 하지만 매장량만 20억배럴에 달하는 무르주크 유전지대를 지척에 두고 있다. 카다피가 사막이 대부분인 남부 지역은 거들떠 보지 않는 것도 그의 최종 목표가 석유시설 장악에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친정부군의 브레가 공격은 단순한 보복 차원이라기 보다 치밀한 각본 아래 카다피 진영과 반정부 세력이 양분하고 있는 힘의 균형을 깨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다피가 석유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석유는 리비아의 최대 수입원일뿐더러 자신이 벼랑 끝으로 몰릴 경우 국제사회를 압박하는 훌륭한 협상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실제 이날 리비아 사태의 여파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4월 인도분 가격이 1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유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트리폴리와 시르테, 라스 라누프, 브레가 등 네 곳을 카다피의 전략 지역으로 지목하며, “브레가마저 카다피의 손에 들어간다면 리비아 사태는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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