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전중 상전' 학생 머슴 부리듯
제자 상습폭행 등 각종 비위 의혹을 받던 김인혜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에 대한 서울대 징계위원회의 파면 의결이 나온 지난달 28일, 한 대학원생은 인터넷 석ㆍ박사 커뮤니티 사이트에 "훈훈하다"('흐뭇하다'는 의미의 인터넷 용어)는 글을 올렸다. 교수 비리에 진저리가 나 음대에서 전과했다는 한 대학생이 "음악을 관둔 데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하자, "이걸로 대학문화가 정말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무소불위의 교수 권력에 대학이 멍들고 있다. 김인혜 교수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한국 교수사회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사제동행이라는 이상은 낡아빠진 도제식 교육 아래 퇴색했고, 교수들은 본연의 역할보다는 몸은 대학에 안주하면서 눈은 바깥으로 돌려 스펙 쌓기에 목을 매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있는 교수사회의 현실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서울의 한 사립대 미대 강사 김모(30)씨는 "학부 때부터 경험한 교수의 횡포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학부 시절 교수가 "무용과에 다니는 딸이 졸업작품에 쓸 무대 그림이 필요하다"고 해 1주일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대형 그림을 그려야 했다. 대학원에서는 자신의 그림을 교수 이름으로 해외 공모전에 냈다. 교수의 실적을 채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시간약속을 한 번 어겼다는 이유로 그 교수에게 '찍혀' 졸업마저 한 학기 미뤄야 했다. 선배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강사 자리를 얻었다는 그는 "교수 임용은 대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인맥 없이 서울의 4년제 대학 미대 교수가 되려면 10억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유명 사립대 성악과 졸업생 A(30)씨는 "서울대 김인혜 교수의 면면은 음대에서는 특별할 게 없는 일"이라고 냉소했다. 그가 지도를 받았던 교수는 평소 과할 정도로 학생들을 때리는 바람에 "전직 조폭 출신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공연티켓 강매나 실기점수를 빌미로 한 합창단 동원은 예사였다고 한다. 심지어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제자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하도록 재학생들에게 은근히 강요할 정도였다"고 A씨는 개탄했다. 각종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아온 이 교수는 중견 성악가로 현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예술대에서 그 정도가 특히 심한 측면이 있지만,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교수들의 비리는 전공 불문이다. 카이스트(KAIST)가 지난해 4월 대학원생 9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5명 중 1명 꼴로 논문ㆍ저서 대필 등 '지도교수의 부당한 요구에 응해봤다'고 답했다. 8%(72명)는 '성희롱 피해 경험'도 있다고 답했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6월 시간강사 5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2%(255명)가 '교수에게 논문 이외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박거용(상명대 교수) 대학교육연구소장은 "학생들이 (부당한 일을 겪을까) 쉬쉬하기 때문에 교수들의 횡포를 인식조차 못하는 학교가 많다"며 "황우석 사태 이후 대학들이 연구윤리강령을 만들었듯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교 차원에서 교수 윤리강령을 제정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 "넌 안돼" 눈 밖에 나면 '끝장'
서울의 한 사립대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인 A(26)씨는 최근 대학원 동료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논문심사를 앞두고 지도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이 동료에게 그대로 전했던 게 화근이었다. A씨는 "'논문심사 교수들과 식사를 해야 하니까 돈을 모아 달라'는 지도교수의 말에 얼마씩 갹출하자고 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친구가 화를 벌컥 냈다"며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솔직히 교수가 해 달라고 하는데 안 할 수가 없지 않느냐"며 난감해 했다. 또 다른 사립대 사회계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B(28)씨는 "지나가는 말이라도 교수가 선물을 갖고 싶다고 하면 학생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면서 "어떤 교수는 생일 등 기념일 선물로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명품 브랜드를 콕 찍어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 아니면 이 바닥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공사 구분 없이 복종을 강요하는 교수 앞에서 학생들은 속만 끓인다. 유명 사립대 문과대의 한 대학원생은 "상납은 기본이고, 크고 작은 교수 심부름을 하다 보면 내가 학문의 길을 가는 것인지 교수 뒤치다꺼리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푸념했다.
무소불위의 한국 대학 교수권력 앞에서 속절없이 휘둘리는 학생들의 사례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양태도 가지가지다. "지난 한 해 동안 교수 아들에게 전 과목을 과외했는데 일반 과외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수고비만 받았지만 교수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K대 정경대 대학원생) "명절 때마다 교수가 지인들에게 하는 선물 포장은 우리가 다 맡는다. 직접 배달도 한다."(H대 미대 졸업생) "쇼핑 간다고 부르면 차로 데려다 주고 짐도 다 들어줘야 한다."(H대 사회과학계열 대학원생) "교수가 이사 가면 학생들이 총동원된다."(P대 대학원생)
이러한 교수들의 횡포는 도제식 교육에서 비롯된 악습이다. 도제식 교육은 학문 전수라는 미명 아래 학생의 삶 전반을 좌지우지한다. 한 사립대 사회계열 교수는 "예술 계열의 경우 학부에서부터 도제식 교육의 병폐가 구조화돼 있지만 인문ㆍ사회계열에서는 대학원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실제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의 권한은 학생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이고, 그래서 더 막강하다.
장학금을 누가 받을지에 대한 추천권은 물론 각종 프로젝트 참가 학생 선정, 연구비 배분 등도 다 교수의 권한이다. 수도권 한 대학의 조교 L(32)씨는 "교수가 '넌 안 돼'라고 하는 순간 학생은 수업료가 없어 휴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명 사립대 정경대의 한 대학원생은 "논문을 써야 하는데 교수가 관심을 안 가져주면 학생은 속된 말로 '답이 없다'. 논문심사 지도교수가 '이건 안 되겠는데' 하면 그냥 끝이다. 유학은 교수 추천이 없으면 꿈도 못 꾸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복종밖에 길이 없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 역시 가능한 대처 방안이 못된다. 한 여대 인문계열 대학원생은 "'이 놈은 안 된다'는 교수의 말 한 마디면 평생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며 "연줄이 얽히고 설킨 이 바닥이 그만큼 워낙 좁다"고 했다.
물론 교수 입장에서는 이를 "일부 문제 교수들에 국한된 것" 혹은 "학생들이 배워 가는 것에 비하면 소소한 희생"이라거나 "일상적인 불평불만"으로 여길 수 있다. 고려대 경영대의 한 교수는 "지금은 학생도 교수를 고르는 때다. 문제가 있는 교수에게는 학생이 가지를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학생들의 불만은 윗사람 아랫사람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평의 수준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 교수'들은 대학에 뿌리박고 있고, 학생들은 그 구조적 부조리에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문제다.
한양대 상경계열의 한 교수는 "그동안 교수와 학생 사이에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권력 구조가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할 때 '너는 내 덕분에 공부할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거다'라는 인식 대신 이제는 학생들을 학문의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대해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k.co.kr
■ 벗어날 수 없는 질기고 질긴 '올가미'
"사제 간 종속 관계가 평생 가는 예체능계는 마치 마피아 조직 같다."
무용계 인사 A씨는 "교수들의 횡포는 졸업한 뒤에도 계속된다"고 단언했다. 무용과 졸업생은 무용단에 입단하거나 예중ㆍ예고 등의 강사로 진출하는데, 이때 교수 추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스승의 거취에 따라 제자의 운명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졸업한 뒤에도 학생들은 교수의 공연에 출연하는 등 몸을 던져야 할 수밖에 없다. 공연마다 찾아다니며 꽃다발을 안겨주는 것은 기본이다.
A씨는 "내부 고발자는 거의 없다"고 했다. 교수들끼리 연결망이 있어 고발 사실이 알려지면 그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 전 한 무용과 학생이 얼굴을 가리고 TV에 출연해 교수의 횡포를 폭로했다가 교수가 그의 춤을 알아봤다는 소문이 퍼져 학교를 그만뒀다. 재학 중에 티켓 수백만원어치를 강매 당하고 졸업작품비를 상납하는 건 '새발의 피'인 셈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음대를 졸업한 박모(33)씨도 "졸업생 중 소수만 오케스트라로 진출하고 대부분은 프리랜서가 된다. 교수와 가깝게 지내야 그나마 연주 기회를 따낼 수 있다"고 했다.
비단 예체능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순한 취업이 아닌 학문의 길로 들어섰을 경우 어떤 영역이든 대학의 도제식 시스템이 작용하기 때문에 교수에게 소위 '찍히면' 앞길이 막막하다. 수도권 사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박모(28)씨는 "연구개발 분야로 진출하려면 석ㆍ박사 과정을 마쳐야 하는데 교수가 논문에 도장을 찍어줘야 대학원 졸업이 가능하지 않나. 밉보여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공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B(28)씨도 "교수 임용 결정권은 보통 지도교수나 지도교수의 지인이 쥐고 있게 마련"이라며 "지도교수가 은퇴하지 않는 이상 늘 나보다 높은 위치이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조교수들도 정교수가 공동 연구를 하자고 하면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봤느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학생들은 당연한 일 아니냐는 듯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려 했다. 말한 뒤에도 "이름이나 학교를 가려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대학 당국이나 기관이 실태 파악조차 하기 힘든 이유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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