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논문 등 인터넷 베끼기 위험수위학생들 적발돼도 "재수없어" 윤리 불감증
서울의 한 사립대 강사 김모(31)씨는 지난 학기, 1학년생 60명이 듣는 통계학 수업을 진행하다 큰 충격을 받았다. 저학년들이 통계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실생활에서의 통계 활용 사례를 리포트 과제로 냈는데, 10명가량이 인터넷 자료를 다운받아 그대로 제출한 것이다. '최근 경기 동향 분석' '대통령선거 투표율 비교분석' 등을 다룬 이 리포트들은 심지어 수업에서 가르치지 않은 어려운 개념까지 그대로 담고 있었다.
지난해 말 K대학 사회과학 계열 졸업논문을 심사하던 지도교수는 미심쩍은 내용의 한 논문을 발견하고 석사과정의 박모(26)씨에게 비슷한 내용의 논문이 있는지 포털사이트를 검토해 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는 똑같은 내용의 문서가 여러 건 눈에 띄었다. 이 교수는 해당 학생의 졸업을 유예시키는 선에서 징계했다. 더욱이 적발된 학생들은 이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재수가 없었다'는 생각이 대부분일 정도로 표절에 무감각한 모습이었다.
대학가에 논문ㆍ리포트 베끼기와 지식절도 문제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는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리포트 표절 검색 시스템을 보유한 정보기술(IT) 업체 코난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학교에 시스템을 시범 운영한 결과 전체 리포트 가운데 표절 건수가 절반을 넘는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각 대학이 2~4년간 축적해 온 100만 건의 리포트와 학교측이 임의로 제출한 과제물을 비교, 비슷하거나 베낀 것으로 보이는 문장 등을 추출, 최종 판단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리포트 검색에 능한 학생들은 표절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고, 학교 당국도 성적 감점 정도의 솜방망이 대응을 해 온 결과다. 워낙 표절이 만연하다 보니 서울대 김모 교수는 리포트를 아예 평가항목에서 빼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그는 "너무 잘 써도 표절이 의심돼 높은 점수를 주기 찝찝하다"며 "자신의 모습이 담긴 현장사진을 함께 제출하게 하거나 베낄 수 없는 과제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한모 교수도 "수업 시간에 인용과 표절의 차이를 설명해도 과제물을 받아보면 인터넷 글을 그대로 갖다 붙인 흔적이 너무 많다. 기본적인 윤리의식조차 거의 없는 게 더 문제"라고 개탄했다.
미국 대학에 유학한 한국 학생들 대다수가 표절문제로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나 처벌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학교 과정에서부터 표절문제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대학 과정에서 리포트 표절이 적발되면 정학 제적에 심지어 학위취소까지 감수해야 한다. 미국 대학들은 표절의 정의와 처벌 내용을 학칙에 밝히고, 입학생에게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도 받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인지 최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유명 대학이 이번 신학기부터 표절 검색시스템을 전면 도입하기로 해 고질적인 병폐가 해소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학교들은 '밈 체커 클라우드'(Meme Checker Cloud)라는 표절 검색프로그램으로 단어 치환이나 어순 변경, 문장 요약 등 다양한 유형의 표절을 적발할 계획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이번 학기에 시행한 결과를 토대로 상호 연계해 표절을 삼각 감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연세대 교육개발지원센터의 오재호 기획팀장은 "인터넷 활성화로 리포트 표절이 늘어나자 교수들이 표절 검사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다"며 "예방은 물론, 평가의 효율성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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