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꿈꿨다. 핵심 전략은 국가 균형발전이었다. 기득권층을 의식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했지만, 분배 쪽에 무게 중심이 더 실렸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성장을 외면한다는 보수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양극화 심화는 참여정부의 국정철학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양극화는 확대되고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수용하는 등 정책의 일관성도 없었다. 주요 국정과제로 저출산ㆍ고령화 등 미래 위험에 대비한 성장동력 창출을 제시했지만, 저성장과 고용 부진으로 국민의 신뢰만 갉아먹었다. 참여정부 5년간 평균 성장률은 아시아(7.0%)는 물론 세계 평균(4.9%)에도 못 미치는 4.4%대에 머물렀다.
기득권층에 무릎 꿇은 참여정부
참여정부의 쓸쓸한 퇴장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아마추어적 국정 운영으로 정책의 구체화에 실패했다는 일반적인 평가와 더불어, 재벌을 위시한 보수층의 발목 잡기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았다. 어찌 됐든 부동산 등 경제정책에선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핵심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릴 정도로 후한 점수를 얻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MB정부 등장의 1등 공신인 셈이다.
국민들은 경제성장과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활기찬 시장경제'를 부르짖은 MB를 선택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경제대통령'이 민생고를 해결해줄 것으로 믿었다. MB정부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부자 감세를 통해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재벌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부자들의 소비가 확대되면, 중소기업과 서민층에도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웬걸. MB정부 3년의 성장 드라이브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났다. 재벌 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하며 성과급 잔치로 흥청거리는 반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격차가 더 벌어져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전세대란, 늘어나는 가계 빚으로 서민경제는 파탄 일보 직전이다. '일자리가 최대 복지'라고 주장했지만, 친기업ㆍ친부자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더 줄어들었다. 집권 4년차에 들어선 MB정부가 '무조건 성장'에서 '동반성장' 전략으로 돌아선 배경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최근 획기적인 대ㆍ중소기업 상생 추진방안을 내놓았지만, 앞길이 밝아 보이진 않는다. 재계의 반발이 거센 탓이다. 특히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는 이익공유제에 대해선 '시장경제 원칙을 흔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핵심 정책인 동반성장지수 발표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있고, 이익공유제는 '좌파 논리'라는 이념 논쟁에 휩싸여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새로운 정책의 실효성 여부는 잘 따져봐야겠지만,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MB정부의 실천 의지다. 지금도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는 여러 장치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시장권력의 각종 탈법과 불공정행위를 감시하는 공적 기구도 활동 중이다. 문제는 재벌의 탈세나 비자금 조성, 중소기업 기술 탈취 등을 적당히 눈감아주는 등 있는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동반성장은 기실 균형발전의 다른 이름이다. 참여정부가 균형발전을 통한 양극화 해소에 실패한 데는 시장권력을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급은, 시장권력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법적ㆍ제도적 틀을 갖추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MB정부, 시장권력 이겨 내야
요즘 분위기라면 MB정부의 동반성장 전략도 같은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동반성장이 구호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시장권력의 저항을 넘어서야 한다. 양극화를 확대하는 성장은 시장경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려 체제의 위기를 부를 수밖에 없다. 동반성장이 균형발전 전략의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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