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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첫 다문화학교 '지구촌국제학교' 개학/ "피부색 달라도 왕따 없는 교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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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첫 다문화학교 '지구촌국제학교' 개학/ "피부색 달라도 왕따 없는 교실 좋아요"

입력
2011.03.0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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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이 네임 이즈 영석 킴. 웰컴! 우리 학교 이름은 더 스쿨 오브 글로벌."

수도권 최초의 다문화학교, 지구촌국제학교가 3일 문을 열었다. 이 학교 김영석(63) 교장은 한국어를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앞으로 선생님이 매일 아침 교문에서 여러분을 맞이할거예요. 오케이?" 아침 9시, 한 교실에 모여 앉은 1학년부터 4학년 학생 17명은 아직은 서먹한 듯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자리잡은 학교는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곳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 가정의 한국 아이들도 입학이 가능하다. 이제 막 문을 연 만큼 올해는 새빛반(1학년) 은빛반(2학년) 금빛반(3학년) 별빛반(4학년) 4개 반만 운영키로 했다. 2일 첫 입학식을 열고 이날 첫 수업을 진행했다.

김 교장의 오리엔테이션 때는 눈알만 굴리며 얌전히 앉아있던 아이들은 금세 친해졌다. 2교시에 담임 교사가 서로가 누군지 간단히 소개해주고, 3교시에 두 명씩 마주 앉아 땅 따먹기 게임을 하게 한 것이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몇몇은 칠판 한 쪽에 붙어있는 세계지도에서 부모의 고향을 짚으며 조잘댔고, 몇몇은 함께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녔다.

구장미(10) 혜미(9) 자매는 아직은 조금 낯선 듯 가만히 웃기만 했다. 필리핀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가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살게 된 자매는 나이보다 한 학년씩 낮춰 입학했다. 장미는 전에 다니던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1학년을 두 번 다녔다. 혜미는 새 학교가 좋다고 했다. "예전 학교 애들은 놀리고 때렸어요. 학교 다니기 싫었어요. 쉬는 시간에도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어요."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쓰는 혜미에게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와~ 혜미 한국어 잘한다!" 혜미의 커다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저 한국사람인데요." 혜미에게 사과하고 꿈을 물었다. 그림 그리기가 재미있다며,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2008년 한 방송 다큐멘터리에 소개돼 널리 알려진 '흑진주 3남매'의 막내 황상연(9)군도 입학했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 어머니가 갑작스레 사망하고 한국인 아버지마저 지난해 9월 자살한 3남매의 사연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현재 3남매는 이 학교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의 또 다른 시설인 그룹 홈(공동생활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어를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외국인 학교인 명동 한성화교소학교를 다니다 전학 온 중국 출신의 손봉호(10)군이 그렇다. 조선족 출신이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손건성(12)군은 6학년 나이지만 4학년 수업을 듣는다.

학교가 생긴 지 얼마 안돼 학생들 실력은 들쭉날쭉하지만 3일 기준 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중국인 8명, 필리핀인 5명, 가나인 2명, 베트남인 1명, 한국인 5명 등 21명이다.

다문화학교라고 허름한 시설의 교실 몇 칸을 떠올렸다면, 틀렸다. 지구촌사랑나눔은 오류동의 6층 신축 건물을 지난해 말 40억원에 매입, 2~4층을 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 세부적인 공사가 덜 끝나 어수선하지만 2층은 1~4학년 교실, 3층은 5, 6학년 교실과 어학지원실 미술실 보건실이 있고, 4층은 강당과 과학실로 꾸며진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 덕이다. 익명의 기부자는 10억원을 내놓았고, 가수 하춘화씨는 데뷔 50주년 기념콘서트 수익금 1억2,300여만원을 오롯이 학교에 기부했다. 대우증권이 도서실과 2년치 교사 인건비, 본죽이 주방 설립비용과 급식비, 포스코가 1억원 상당의 교육기자재, 현대차가 음악실을 갖춰주는 등 기업들도 발 벗고 나섰다.

지구촌사랑나눔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및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중 1만8,000여명이 정상적인 학교 교육 과정을 밟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대표는 "이런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지 않고, 부모가 미등록 노동자라도 기를 펴고 다닐 수 있게 하려고 학교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수업은 낮 12시10분에 끝났다.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인 이한빛(7)양은 실내화를 벗고 운동화를 갈아 신으라는 담임 교사 말에 입이 삐죽 나왔다. "아~ 여기 더 있고 싶은데!"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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