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70년대 서울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아침에 나가보면 골목, 마당마다 북한에서 날려보낸 삐라가 흔했다. 미처 수거가 어려웠을 인왕산 산자락 등지에선 이슬 젖은 불온삐라들을 무더기로 찾을 수 있었다. 파출소에 주워다 주면 연필이나 공책하고 바꿔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용은 치졸하기 짝이 없었던 것 같다. 북한체제 선전에서부터 요즘의 음란물에 가까운 '대통령의 사생활'따위의 만화까지 있었다. 심리전 효과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와 유사한 소문이 꽤 돌아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 패왕별희(覇王別姬)의 소재가 된 '사면초가(四面楚歌)'고사는 심리전의 고전적 사례다. 초패왕 항우가 한왕 유방의 장수 한신에 쫓겨 해하(垓下)에서 포위됐을 때의 얘기다. 돌연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 고향노래에 수년간 전쟁터를 떠돌던 군사들이 동요, 눈물을 흘리며 앞다퉈 진영을 탈출했다. 유방의 책사 장양의 술책이었다. 군사들의 꺾인 사기를 보고 끝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항우의 애첩 우희가 자결하고, 항우 역시 결사대를 이끌고 적진 돌파를 시도하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5년에 걸친 초한전쟁은 막을 내렸다.
■ 현대 심리전 사례로는 태평양전쟁의 '도쿄 로즈', 베트남전에서의 '하노이 한나'가 자주 거론된다. '도쿄 로즈'는 일본 선무방송을 통해 애절하게 향수를 유발하던 여 아나운서에게 미군병사들이 붙인 애칭이었다. 한 명이 아니라 12명이었던 도쿄 로즈 중 유일하게 신원이 밝혀진 이바 도구리는 5년 전 사망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남의 나라에서 의미 없는 전쟁을 하는 미군 여러분, 걱정하는 가족 품으로 어서 돌아가세요."라며 전의를 꺾었던 '하노이 한나'는 저항영웅으로 대접 받으며 조용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심리전 효과는 때로 무력보다 강력하다. 더욱이 주민들을 세상사정에서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는 전단이나 방송을 통한 외부정보 유입에 대해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불바다, 조준격파"등의 막장언사로 격하게 반응하는 까닭이다. 6년간 중단됐던 대북심리전 재개는 북한의 군사도발이 초래한 일임은 물론이다. 그렇더라도 칼은 정작 칼집에서 꺼내기 전이 가장 두려운 법.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효과적인 압박수단은 당분간 국면 관리용으로 아껴두는 것이 좋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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