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님 보세요. 시인 허수경 선생님과 함께 한 밤 이후로 잘 지내셨지요? 선물로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아, 하고 기뻤지만, 몇 년 동안 진척도 없이 붙들고만 있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처지여서, 그냥 나중에 천천히 읽자 했습니다. 책과 인사만 한다는 기분으로 그냥 한 두 페이지만 읽자 했어요. 그런데 내려놓지를 못하고 계속 읽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책 표지를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제목이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마음산책)이더군요.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이라는 부제도 그제야 보았습니다. 편지로>
책의 맨 앞에 놓여 있는 것은 해방 이후에 태어난 문학청년들의 멋스러운 연애편지였습니다. 화가 김병종 선생은 소설가 정미경 선생에게 20대 후반의 어느 날 이런 문장을 적었군요. "미경이 서울을 떠난 후 나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몹시 무뚝뚝하오." 1971년의 어느 날 소설가 박범신 선생은 아내 황정원 여사에게, 아직은 그녀를 만나기 전인 어떤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씁니다. "그때 어떻게 당신과 내가 함께 있지 않고도 불행하지 않았던가." 왜 이 두 편지가 책의 맨 앞에 있는지 넉넉히 알겠더군요.
이 편지들을 읽으며 미소 지었습니다. 한껏 예를 갖추고는 있지만 행간에는 20대 청년의 조급한 열정이 고스란했으니까요. 조급함을 감추느라 생텍쥐페리도 인용하고 버지니아 울프 얘기도 꺼내고 그랬겠지요. 소위 7080세대들의 저 사색과 뒤엉킨 낭만도 좋았지만, 저에게 더 애틋했던 것은 이광수, 김동인, 박용철 같은 한국근대문학의 주역들이 남긴 편지였어요. 가난한 가장의 의연한 척하는 목소리가 조금 눈물겨웠습니다. 이광수는 도쿄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아내 허영숙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5월부터 매달 학비는 60원 보내리다. 그리고 여름 양복값 보낼 터이니 얼마나 들지 회답하시오. 공부하는 중이니 저금 아니 해도 좋소. 학비가 곧 저금이오. 여름옷에는 레인코트 같은 것이 있어야 하겠으니 모두 값을 적어 보내시오." 이 책을 엮은 강인숙 선생은 이렇게 덧붙이셨군요. 1930년대에 남편을 두고 두 번이나 유학을 간 여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뒷받침해준 남편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그렇군요. 알만큼 안다 했던 인물도 이렇게 다시 보게 하는 것이 편지인가 싶습니다.
책을 다 읽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손편지라는 것은 왜 별 내용이 없어도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편지는 문어체의 공간입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다섯 줄짜리 편지라 해도 일단 편지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이의 말투는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양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그 문어체의 공간 안에서만 비로소, 구어체로는 담을 수 없는, 그 자신도 몰랐던 진심이 '발굴'되고 심지어 '생산'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문어체만의 특별한 힘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이제는 손편지는커녕 이메일조차도 문자메시지에 밀리는 시대입니다. 문어체는 위선적이거나 촌스러운 것이 되었어요. 우리는 거의 완전한 구어체의 세계를 살면서 비로소 언문일치를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서울의 옛 동네가 철거되듯 문어체의 진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다 이 좋은 책 덕분에 한 생각들입니다. 다시, 고맙습니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이성자 화가가 쓴 편지의 따뜻한 인사를 되돌려 드립니다. "봄이 곧 문을 두들길야고 ?니다. 이걷만 하여도 희망에 늠침니다." 신형철 드림.
신형철 문학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