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을 고비로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종료되면서, 저축은행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부실 저축은행의 새 주인을 찾는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방만 경영과 부실 감독으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대주주 및 당국자를 찾아내 문책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독점해온 감독 구조를 재편하려는 시도도 감지되고 있다.
급물살 타는 책임자 처벌
예금보험공사는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의 대주주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여 ▦출자자 대출 ▦동일여신한도 대출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확인되면 검찰 고발 및 재산 회수 등 민형사상의 책임을 강력하게 묻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저축은행 관계자도 “영업 정지된 일부 대형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해 당국이 위법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감독 당국이 추락한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부실 대주주에 대해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감독 실패의 책임자를 가리기 위한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저축은행 업계에 대한 당국의 규제 완화 조치 등 약 3,000건의 자료를 금융위 등에 요청했으며, 일부 자료는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정상 공동계정 설치 문제가 해결된 뒤 논의 될 수밖에 없으나, 이번에는 정책 실패의 소재를 확실히 가려내야 한다는 게 관련 상임위(정무위원회) 소속 의원 대부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융 감독권 다변화 논의도 시동
이번 사태가 잘못된 금융감독 구조에 있다는 전제를 내걸고, 금융위와 금감원이 독점하는 감독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보의 한 관계자는 “감독 당국이 영업정지에 따른 시장 불안을 너무 의식해 부실 저축은행을 제때 정리하지 못했다”며 “정리가 늦어져 부실이 커지면 나중에 투입해야 할 예보기금이 더 늘어날 것이 명백한데도 영업정지가 단행되기 전에는 아무 권한이 없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한국은행도 이번 사태가 그동안의 숙원이던 한은법 개정안 통과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개정안에는 제2금융권(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한은의 감독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한은은 최근 내놓은 분석자료에서도 “한은이 (저축은행 대한) 제재력이 없어 사태가 확산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뉴 머니’ 공급 작업
부실 저축은행의 새로운 주인을 찾는 작업과 업계 구조조정을 위한 예보기금 내 공동계정 설치 문제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7일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관련, “은행 이외에 제2금융권에서도 저축은행 인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금융지주사가 인수할 수 있는 저축은행이 한정된 상황에서 8개가 무더기 영업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삼화나 중앙부산저축은행 등에 대한 매각이 시도됐을 때에도 일부 증권사와 캐피털사,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 등이 실사를 벌이기도 했으나 끝내 무산됐다”며 “김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은 물론이고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보기금 공동계정 설치 문제도 이번 주에 결정이 날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3일에 이어 28일 다시 한번 예보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다음달 4일 법안을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허태열 정무위원장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여야가 대립하고 있지만, 이번에 타결이 안 되면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은 다들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몰시한을 정한다든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타협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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