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에서 지난해는 잊지 못할 해다. 2003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한지 7년 만에 중국에 1위를 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해가 밝은지 두 달이 지난 현재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 조선업체들이 중국에 설욕하듯 수주 행진을 벌이며 양과 질 모두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1일 조선ㆍ해운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와 LIG투자증권,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올 들어 확인된 우리 조선업체들의 선박 수주 건수는 23건에 이른다. 수주 직전 단계인 건조의향서(LOI) 체결건수를 포함하면 30건에 육박한다.
질적 측면의 격차는 더 크다. 우리 업체들은 올 들어 대당 1조원을 넘어서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나 설비를 대거 수주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세계 최대 규모인 1만8,000TEU(컨테이너 1만8,000개 선적)급 컨테이너선 10척을 수주했다. 이 계약은 추가로 20척을 더 건조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사실상 30척을 수주한 셈이다. 계약 가격은 척당 2,000억 원씩 모두 6조 원 규모다. 현대중공업이 지난주 수주한 대형 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설비(FPSO)도 가격이 1조3,000억 원대에 이른다.
한국 업체들의 석유시추선(드릴십) 싹쓸이 수주 행진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미국 시추전문업체 다이아몬드사로부터 드릴십을 수주하는 등 올 들어 4척의 드릴십을 수주했다. 척당 가격은 6,000억원 정도다. 대우조선도 미국 앳우드오세아닉스사로부터 드릴십 1척을 수주했고, 노르웨이 아커드릴링사와 드릴십 수주를 위한 건조의향서(LOI)를 작성했다.
STX 자회사인 STX프랑스도 지난달에 유럽 굴지의 선사인 하팍로이드사로부터 크루즈선 한 척을 수주했다. 보통 크루즈선은 가격이 1조원 안팎에 이른다.
반면 중국 업체들의 수주 목록은 우리 업체들과 매우 대조적이다. 올 들어 최근까지 확인된 수주 건수는 15건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중 14건은 고부가가치 선박이 아닌 중소형 컨테이너선이나 건화물(벌크)선, 탱커선 등이다.
이 때문에 증권업계 등에서는 우리가 올해 세계 조선업 1위 자리를 탈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업계에서는 올해 중국 업체들의 수주 성과가 부진한 이유로 지난해 워낙 많은 배를 수주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들을 건조하기에도 바빠서 새로 배를 수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건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수주경쟁이 새롭게 가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업체들이 올해 대표적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을 수주한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중국 조선업체 후동중화는 1월 일본 미쓰이가 미국 엑슨모빌의 LNG프로젝트를 위해 발주한 4척의 LNG선을 수주했는데 외신들은 이 수주가 중국이 해외 선주로부터 수주한 최초의 LNG선으로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해에도 중국 최초의 드릴십인 '다롄개척자'의 건조에 착수해 사실상 드릴십 독점국이었던 우리 나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우리 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을 앞서 나갈 것으로 보지만, 중국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아 양적ㆍ질적 우위를 유지하려면 부단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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