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 국세청장 수사가 장기화될 것인가. '그림 로비' 의혹 등에 휘말려 지난달 28일 검찰에 소환된 한 전 청장은 14시간이 넘는 마라톤 조사를 받고 일단 귀가했지만 검찰은 한 전 청장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 안원구(수감 중) 전 국세청 국장과의 대질신문 등 추가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한 전 청장이 조사를 받은 후 서울중앙지검 로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1일 새벽 4시40분. 14시간40분 만에 조사실을 나온 한 전 청장은 "성실히, 충실히 답변하느라 오래 걸렸다"고 말하고 '의혹을 깨끗이 해명했나'는 질문에 "예"라고 짧게 답한 뒤 검찰청사를 떠났다.
그는 이날 조사에서 자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차장 재직 당시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그림 '학동마을'을 상납했다는 의혹, 현 정부 출범 전후 정권 실세를 상대로 유임 로비를 벌인 의혹 등에 대해 그는 "대가성이 없었고, 일부 내용은 왜곡된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의혹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교차 세무조사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이 그의 이 같은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한 전 청장이 이미 거짓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 '학동마을' 상납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그림을 본 적도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같은 해 말 검찰은 그의 측근이었던 국세청 직원 장모씨를 불러 "한 전 청장의 심부름으로 '학동마을'을 500만원에 사서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한 전 청장은 미국 뉴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적당한 시기에 설명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은 가장 중요한 물증인 '학동마을'을 확보해 보관 중이다. 검찰은 2009년 11월 전 전 청장의 부인이 '학동마을' 판매를 의뢰했던 곳이자 안원구 전 국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화랑인 가인갤러리 압수수색을 통해 이 그림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그림의 감정가는 기관마다 다른데 미술계에서도 700만원에서 수천만원대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그림 로비의 상대방인 전 전 청장 부부와, 안 전 국장 등을 참고인으로 다시 불러 조사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이들과 한 전 청장을 대질조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안 전 국장이다. 그는 2009년 11월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의 그림 강매 의혹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자 표적수사라고 반발하며 "한 전 청장이 '정권 실세에게 전달할 10억원 중 3억원을 마련해 오면 국세청 차장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때 이명박 대통령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라고 적힌 전표를 발견했는데, 한 전 청장이 이를 은폐하려고 국세청 내 감찰조직을 동원해 나를 밀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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