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동 449.’ 30여 년 전 제가 다닌 대학의 주소이며, 지금 제가 봉직하는 대학의 주소이기도 합니다. 월영(月影)이란 말은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이 달그림자를 즐겼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 대학 안에 그 이름을 딴 월영지란 호수가 있습니다. 월영지의 뛰어난 절경 덕에 우리 교정은 전국 대학 중에서 ‘아름다운 캠퍼스 10선(選)’으로 손꼽힙니다. 월영지 주변으로 서 있는 많은 나무들 중에서 재학 시절에 제 마음을 준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이른 봄에 노란 꽃을 활짝 피우는 나무가 산수유나무라는 것을 그땐 몰랐습니다. 이름도 모른 채 첫눈에 반한 나무였습니다. 꽃향기는 없었지만 노란 등불을 밝힌 듯 은은한 색감이 시인을 꿈꾸었던 제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꽃이 피면 산수유나무와 함께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집을 읽거나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산수유나무 아래에서 낯 붉어지는 만남이 있었고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뛰는 추억이 남았습니다. 졸업을 하면서 그 산수유나무를 마음속에 옮겨 심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제 마음의 나무는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인데 어제 월영지에서 만난 산수유나무는 꽤 늙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탄탄했던 껍질이 부서질 듯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봄이 온다는 것이 새로워지는 일이 아니라 추억의 껍질이 부서지는 나이를 산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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