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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우울증 거식증도 'Made In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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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우울증 거식증도 'Made In USA'

입력
2011.02.2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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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단 와터스 지음ㆍ김한영 옮김/아카이브 발행ㆍ376쪽ㆍ1만8,000원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일본에 우울증 치료제를 팔기 위해 광고와 홍보를 하는 과정에서 이 말이 만들어졌다면 어딘지 수상한 느낌이 든다. 요즘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갖는 생각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미국의 저술가 에단 와터스가 쓴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의 주제는 패스트푸드와 랩 음악처럼 정신병도 미국식으로 세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계가 생물다양성을 잃어 가듯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마저도 미국식으로 획일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정신 이상은 다양한 문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가령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사소한 사회적 모욕에도 장기간 원한을 품는 아모크란 정신착란에 걸리고, 중동에서는 일종의 빙의 현상인 자르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20여년 전부터 미국에서 유행해 온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신경성식욕부진증(거식증) 등 몇몇 정신병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일본에서 우울증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의미가 달랐다. 일본의 우츠뵤(鬱病)는 대부분 입원을 필요로 하는 심각하고 드문 질환이었다. 또 유우츠(憂鬱)는 몸과 마음의 전반적인 침울함에다 슬픔까지 포함하는 단어였다. 일본의 TV 영화 등은 우울의 상태를 존경스러운 것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우울증(depression)과는 의미가 달랐다.

당시 미국에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라고 알려진 항우울제 프로작으로 선두를 달리던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는 이같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일본 시장을 개척하지 않기로 90년대 초 결정했다. 일본인만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 등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시장이 확실치 않아서였다.

그러나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일본 시장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이 회사가 어떻게 미국과 일본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일본인의 우울증에 대한 관념들에 대한 지식을 빼내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해 일본인의 인식을 바꿔 놓았는지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다. 90년대 장기불황으로 인한 심적 고통과 고베(神戶)지진 등을 기화로 미국의 제약회사와 제약협회가 우울증에 대한 미국적 관념을 일본인들의 뇌리 속에 심어 가는 과정이 교묘하다. 소비자의 의식 자체를 구체화하는 메가마케팅이다.

이 과정에서 '고코로 노 카제' 즉 '마음의 병'이라는 말이 광고와 홍보물을 통해 되풀이됐다. 이 슬로건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의학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믿게 됐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항우울제 팍실 출시 첫해인 2001년 매출액은 1억달러였고, 2008년에는 연간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우울증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이 10여년 사이에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저자는 이외에도 홍콩의 거식증, 스리랑카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잔지바르의 정신분열증 등의 사례를 들어 인간 정신의 이해가 미국화하고 있는 현상을 드러내 보인다. 세계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인간 정신의 균일화이며 이는 의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책이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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