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최신예 F-15K 전투기의 부품정비를 미국 항공업체인 보잉사에 맡기는 수천억원 규모의 성과기반군수지원체계(PBL) 도입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공군은 조속히 계약을 맺고 시행하려는 반면, 보잉사는 '서두를 게 없다'는 입장이어서 군 당국이 계약 협상에서 보잉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PBL은 전투기 가동률과 같은 성과지표를 정해 놓고 업체가 이를 초과 달성하면 가산금을, 미달하면 벌금을 부여하는 외주계약이다. 단 정비과정에서 부품이 얼마가 필요하든 모두 외주업체의 부담이다. 보잉은 고객관리 차원에서 F-15를 구입한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공군은 F-15K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작사인 보잉에서 부품을 구입해 자체 정비하고 있다. PBL에 비해 비용은 덜 들지만 부품 인도에 시간이 걸려 F-15K의 평균 정비대기시간은 50일에 달한다. 2년 넘게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 부품은 선주문 하지만 적중률이 48%에 불과해 재고만 쌓인다. 때문에 F-15K 45대 중 매년 5, 6대가 격납고에 발이 묶이고 있다. 군 관계자는 28일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이 계속 늦춰지고 있어 기존 전투기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PBL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군 당국은 2008년 3월부터 보잉과 10여차례 협상을 벌여 F-15K의 핵심부품 948종에 대해 PBL 도입을 추진했다. 양측은 가동률을 85%로 맞추고 부품인도 시간을 24시간으로 줄이자는 데까지 의견을 접근했다.
하지만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군 당국은 2015년까지 5년간 PBL 비용을 3,0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올해 예산에 266억원을 배정했는데, 보잉은 터무니 없는 수준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보잉은 당초 PBL 비용으로 1조758억원을 제시했다가 한국측이 난색을 표하자 6,017억원, 5,423억원, 4,807억원으로 계속 낮췄다. 고무줄 가격이었다.
무엇보다 군 당국은 보잉의 비용산정 기준을 전혀 알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협상력 부족을 절감하며 일부 부품에 대해 보잉의 협력사인 레이시온이나 NGC와 직접 계약을 맺는 방안을 추진하다 무산되기도 했다.
군 당국은 7월까지 PBL 계약을 매듭짓기 위해 10일 제안요청서를 보잉에 보냈다. 그러나 보잉 관계자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가 보내온 요청서에 대해 여전히 검토할 것이 많다"며 "사안이 복잡해 올해 연말이 돼서야 답변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안에 PBL 시행이 어렵다는 얘기다. 보잉의 다른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편성한 PBL 예산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도 계약을 원하지만 (예산을 써야 하는) 한국측도 마찬가지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는 "보잉은 PBL 전문가이지만 이제 시작하려는 한국군은 아마추어"라며 "계약 체결 후 보잉의 지연 전략에 말렸는지 꼼꼼히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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