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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매몰시대를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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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매몰시대를 살면서

입력
2011.02.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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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폭설과 혹한으로 큰 고통을 안긴 겨울이 가고, 대지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난해 11월 하순 이후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구제역이 봄과 함께 진정ㆍ종식되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2002년의 경우 농림부가 105일 만에 구제역 완전 종식을 선언했는데, 올해에는 그 기간이 더 길지 모른다. 더욱이 살처분해 묻은 가축의 수가 그때의 10배도 넘으니 매몰처분의 후유증이 봄과 함께 닥칠 것이라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만의 환경부장관도 "이르면 1~2개월 뒤부터 구제역 침출수 문제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제역 사체 침출수 걱정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을 하든 구제역 초동 대처가 잘못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지적대로 '한국의 구제역 확산은 지난 50년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살처분 보상비만도 2조4,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니 여성가족부의 10년 예산과 비슷한 규모다.

그런데 4,000곳이 넘는 매몰지역 가운데 비닐 등 차단막이 찢어지면서 사체의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내리는 사례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가축들을 하천 부근이나 비탈진 곳에 졸속으로 묻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풀리자 사체 부패가 가속돼 악취가 심해졌다. 살처분은 원래 그 자체로 2~3차 피해를 낼 수 있다. 구제역 사태가 수그러들어 감염 두수가 적어져야만 살처분 가축을 고온 멸균해 처리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계속 매몰만 하게 되면 침출수 처리 등을 위한 사후 관리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국의 침출수 예상치는 8톤 탱크로리 7,600여대 분량이 된다는데, 이 침출수가 상수원이나 지하수를 오염시킬 것이라는 재앙설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의 책임이 큰 재해나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흔히 생기는 일이지만,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돼지 핏물이 나왔다"는 식의 괴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정부가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구제역이 더 번지지 않게 하면서 매몰지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정부는 2002년, 2008년 구제역이나 AI(조류인플루엔자) 매몰지를 전부 조사한 결과 지하수가 오염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의 매몰규모가 너무 크고 심각하다.

이쯤에서 사람 이야기를 해 보자. 어떤 특정인을 다중이 공격하고 비난해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살처분 매몰조치와 다름없는 일이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신상 털기나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근거 없는 루머나 집단의 악의적 인신공격에 끄떡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한 음대교수가 갖가지 추문 혐의에 휩싸여 대학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학장 직에서 직위해제된 이 교수에 대한 징계내용은 며칠 후 결정될 것이다. 음악계에서는 레슨과정에서 제자를 함부로 다루는 행동이나 공연 관람권 강매, 레슨일수 조작 등을 흔히 있는 관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 의견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근거 없는 투서와 고발이 이루어질 리 없다고 생각하며, 관행으로 치부돼온 여러 문제점이 이를 계기로 불식되기를 바란다. 다만, 사실관계가 엄정하게 확인돼야 하며 그 동안 쌓아온 명예를 최대한 보호하는 차원의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파렴치하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리와 잘못이 잊히고, 그 사람이 원래 자리를 되찾는 일이 흔하다. 예체능계 대학입시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도 얼마 후 사회적 위상을 복원해 종전과 다름없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학력 위조자로 뭇 사람의 지탄을 받더라도 명예를 잃는 것은 잠깐일 뿐이다. 진정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참 안된 일이지만, 확실하게 매몰해야 부작용이 없고 비슷한 비리와 추문이 재발하지 않는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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