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총리가 이끄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엊그제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유도하는 첫 작품을 내놓았다. 전기ㆍ전자, 기계ㆍ자동차ㆍ조선, 건설 등 6개 분야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공정거래협약의 이행도와 중소기업의 체감도를 평가한'동반성장지수'를 만들어 공개하는 것이 골자다. 어느 기업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지 가려내 국민들에게 알리고 우수기업에 세제 혜택도 주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한다는 것이다. '9ㆍ29 청와대 협약'에 따라 지난해 말 출범한 동반성장위가 모처럼 제대로 일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재계가 기업 경쟁력을 해치는 규제라고 거세게 반발하자 지수 작성과 발표를 내년으로 미루고 평가 잣대도 재검토하기로 물러선 것은 크게 실망스럽다. 정 위원장은 "(지수 서열화 여부 등은) 발표시점에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이미 시행됐어야 할 동반성장지수의 작성 기준이 흐려지고 발표마저 계속 미뤄지는 것은 정부와 재계 모두 시장 불신을 자초하는 격이다.
우리나라 시장의 성격상 기업 줄 세우기식의 지수 작성이 초래할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서열을 매기는 대신 우수 보통 등의 등급을 부과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우수 등급만 공개하거나 결과를 비공개하자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청와대에서 동반성장 취지에 손뼉을 친 대기업 총수나 어제 취임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실무진에게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전달해 지수의 조기 시행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정 위원장이 동반성장 정책의 하나로 제안한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봄 직하다. 동반성장지수 시행만으로 대기업 부담이 3조원 가까이 늘어난다는 재계로선 펄쩍 뛰겠지만, 정 위원장 말처럼 산업생태계의 건강성과 지속성, 대중소기업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부정적으로 볼 사안이 아니다. 새로운 길은 늘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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