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5대궁인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를 관람한 사람 가운데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종묘를 제외한 4대궁의 정전 앞에 향로가 놓여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를 발견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경복궁의 근정전 앞과 덕수궁의 중화전 앞에는 좌우로 각각 청동향로가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하나같이 뚜껑 없는 상태로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왜 뚜껑이 없을까 의심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관람자의 관찰력과 통하는 것으로, 뭔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왜 차이가 생겼을까 의문이 생기고 이를 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향로는 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궁궐의 정전 앞에 있는 향로는 임금이 주관하는 중요 행사에 향을 피우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권위의 상징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향로가 경복궁 근정전 앞과 덕수궁 중화전 앞에만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 이 아닐 수 없다. 이유는 법궁에만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즉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과 대한 제국의 법궁인 덕수궁에만 향로가 마련된 것이다. 창덕궁이나 창경궁은 이궁(離宮)이기 때문에 향로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앞과 덕수궁 중화전 앞에는 지금도 뚜껑 없는 향로가 서로 마주보고 제 위 치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들 향로에 뚜껑이 있는 자태를 보이고 있다가 언젠가 알 수 없는 시기에 뚜껑만 모두 없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 와서도 그 상태로 자리를 지켜왔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지난해 이른 봄 유물창고 정리 과정에 손잡이에 용 조각이 장식된 청동뚜껑을 발견하게 되었으나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혹시 경복궁 근정전 앞의 향로뚜껑이 아닐까 하고 가져가 올려놓아 보았으나 재질과 조각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제짝이 아니었다. 이어 또 다른 궁궐에 향로가 없을까 하고 생각한 곳이 바로 덕수궁 중화전 앞의 뚜껑 없는 향로를 생각하고 맞춰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중화전 앞의 향로는 비록 하나이긴 하지만 제 뚜껑을 찾게 되었다.
경복궁 근정전이 최초 건립될 당시 함께 마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향로와 덕수궁 중화전이 건립된 시기는 무려 5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비록 근정전 앞의 향로를 모델로 제작 했다고 하더라도 두 향로는 분명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즉 조선 왕은 철종까지이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해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왕의 경우와 황제의 경우가 동일하게 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덕수궁 향로 뚜껑에는 용의 발톱이 다섯 가닥으로 조각 되어 있는데 근정전의 향로 뚜껑에 세긴 용의 발톱은 4가닥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머지 3점의 뚜껑은 어디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 수수께끼다. 그나마 1점이지만 그 동안 뚜껑 없이 법궁을 지키고 있던 덕수궁 향로는 이제 제짝을 찾아 본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뚜껑은 다시 유물창고로 들어갔다. 찾아진 뚜껑 하나라도 향로에 올려 본래의 모습을 보이도록 하고 아울러 없는 뚜껑은 복제해 향로가 본래의 위용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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