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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샤일록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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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샤일록 경제

입력
2011.02.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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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인 이민자들 사이에 "은행 돈 잘 쓰고 죽으면 잘 살은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은행 빚으로 집 사고, 차 사고, 가게 얻어 장사해서 조금씩 갚으면서 평생 무리 없이 살아가면 잘 살았다는 얘기다. 미국 서민사회를 들여다보면 대개가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평생 빚을 떠안은 채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빚에 쪼들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대개가 부동산 버블시기에 빚을 내서 집을 산 경우다. 통상 3억~4억원 정도의 빚을 내서 집을 구입하다 보니 이자만 월 150만~200만원으로 월급의 절반가까이를 차지한다. 이자를 내고 남는 돈으로 자녀들 과외비나 등록금을 대고 생활까지 해야 하니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힘든 해외 근무를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살던 집을 전세주고 받은 전세금으로 빚을 일단 막으면 이자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값은 오히려 훨씬 떨어졌으니 더욱 분통이 터진다. 굳이 자위한다면 최근 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전세가격 폭등이다. 그때 집을 사지 않았으면 지금쯤 치솟는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생고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그나마 견딜만하지만, 좀더 심한 경우도 종종 목격한다. 큰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이자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추가로 빚을 내다 결국 집을 처분하고 월세로 전전하는 경우다.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에게 대출을 해주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문제가 발생한 과정도 유사하다. 부동산 버블시기에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집값이 폭락하면서 집주인들이 쪽박을 차고 쫓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한 두 곳이 아니라 미국의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돈을 빌려준 제2금융기관들이 먼저 쓰러져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지금 우리사회에도 매우 위험한 신호가 울리고 있다. 엄청난 가계부채와 저축은행의 부실문제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지난해 4분기 기준 800조원에 이르고 있다. 사상 최고치다.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빚을 얻어 집을 산 뒤 생활비가 부족하면 다시 마이너스 통장으로 막는 방식이겠다.

저축은행 부실도 건설관련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로 인한 것이다. 부동산 버블시기에 건설회사에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줬으나 분양이 부진하면서 생겨난 결과다. 정부는 저축은행의 부실이 금융기관 전체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모습이다.

특히 저축은행의 부실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사성이 있다. 둘 다 제2금융권이라는 점, 무리한 부동산 투자로 부실이 발생했다는 점 등이다. 차이가 있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일반인을 상대로 대출을 한 것이고, 저축은행은 주로 건설사들에게 대출을 했다.

에서 샤일록이 안토니오에게 요구하던 '1파운드의 살'처럼 빚은 결국 살벌한 대가를 요구한다. 큰 빚을 지면 큰 희생이 따른다. 특히 국가가 할 일은 국민들이 많은 빚을 지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금융기관이 부실해졌는데도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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