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비탄을 금하며
존단(1572~1631)
......
그러나 사랑으로 세련되어,
우리 자신 이별이 무언지 모르는 우리는,
마음 서로 확신하여,
눈과, 입술과, 손 놓침을 거의 개의치 않는다.
그리하여 하나로 된 우리 두 영혼은,
나 떠나더라도, 단절조차
아니 겪고, 도리어 두들겨
공기처럼 엷게 늘인 황금 마냥 확장된다.
만일 우리가 둘이라면, 한 쌍의 꼿꼿한 컴퍼스가
둘인 것이듯이 둘이다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고정된 그대의 영혼은
다른 다리가 움직일 때 움직인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중심에 있지만,
다른 다리가 멀리 떠돌 때에는,
그것은 다른 다리를 향하여 몸을 기울여 듣고자 한다.
그리하여 다른 다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대도 다른 다리처럼
기울어져 달려가는 나에게 그리하리라.
그대의 굳건함이 나의 원을 올바르게 한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내가 시작한 곳에서 끝마치게 한다.
● 이 시는 시인이 긴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부인과 이별하며 쓴 시라지요. 이별을 컴퍼스의 두 다리로 비유한 것이 절묘하지요. 다리는 둘일지언정 머리는 하나인 컴퍼스. 그래서 한 다리 멀어지면 멀어진 다리 쪽으로 몸 기울이는 컴퍼스. 멀어지면서도 끝내 몸 나누지 않는 컴퍼스.
사랑과 이별이라는 관념을 컴퍼스라는 객관적인 상관물을 통해 감각화시켜 놓은 시지요. 저는 이런 시처럼, 관념을 관념으로 노래하지 않고 어떤 구체적 사물의 힘을 빌려 노래한 시들이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어려운 시들이 많지요. ‘대기운화 가운데 무형(無形)의 사물은 있지 아니 하니 무릇 무형의 말과 글은 운화기가 행하는 바가 아니요, 품부받은 기가 허하고 엷은 이가 행하는 바이다’라고 설한 혜강 최한기의 까지 떠올려 보게 하는 시들도 더러 있지요.
저는 아직 촌스러워,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처럼 명료한 위의 시 같은 시들이 좋습니다. 병(病)이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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