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각. 지난 시절 정경유착과 밀실 정치가 혼효해 있던 곳, 혹은 그 진앙으로 여겨지던 장소다. 이곳이 요정 정치의 산실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국악의 새 보금자리로 거듭 난다.
16일 삼청각 일화당에 마련된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의 바램이 충분히 근거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족했다. 이날 ‘삼청각 프리미엄 콘서트 자미(滋味) 시연회’로 이름 붙여진 무대는 국악의 상품화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2005년 3월부터 ‘삼청각 런치 콘서트’란 이름으로 펼쳐 온 자리를 잇는 것으로 공연과 식사를 합해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문화 상품이다.
이날 진행을 맡은 세종문화회관 전문위원 유은선씨의 말마따나 국악 상업화의 시험대였다. 유씨는 “이순신동상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가 스토리텔링 문화 공간으로 거듭난 광화문 일대 37개 문화 주체를 통합하는 사업”이라며 “특히 통합 티케팅(공연+전시+음식 등의 패키지 티켓)을 통해 관광산업적 접근을 했다”고 의미를 밝혔다.
이 상품에서 국악의 중심은 서양의 시각에 있다. 여성 9인조 퓨전 앙상블 청아랑(靑蛾娘)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신시사이저와 해금으로 연주하는 등 서양 보편주의를 매끄럽게 실현시켜 나갔다. ‘Yesterday’ 나 ‘Eres Tu’ 등 귀에 익은 팝송도 국악적 시김새로 능란하게 연주했다. 통조림에 진공 포장돼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국악이었다. 편곡까지 도맡은 유씨는 “정악인 ‘만파정식지곡’ 등 정규 국악 레퍼토리에서 외국 음악까지 국악기 통해 최상으로 들려준다는 취지”라고 이날의 공연 상품을 정의했다.
삼청각에선 이미 외국 관광객들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삼청각의 아침’, 겨울과 여름방학 때의 가족 공연물‘자미 동화’ 등 비슷한 무대가 열리고 있어 이번 시도가 낯선 것만 것 아니다.
일련의 무대에 대해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2009년 7월 세종문화회관이 삼청각을 운영하면서 외국인들에게 고급스런 전통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취지를 밝혔다”며 “고급화한 상품을 파는 장소라는 데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록 시연회의 자리이긴 했으나 원칙적으로 악기마다 설치된 마이크와 스피커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점, 인간적 실내 공간에서의 국악 연주라는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음향 설계 등 하드웨어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국악이 떠난 자리를 국악 상품이 메울 수 있을까. 보편주의와 상업화의 요청 앞에서 삼청각은 이 질문에 답해 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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