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재학생인 김모(24)씨는 최근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1년 넘게 살고 있는 하숙집의 주인이 인근의 다른 하숙집 주인들과 집 거실에 모여 앉아 회의를 하는 것이 눈에 띈 것. 김씨는 "하숙집 아줌마들이 서로 하숙비를 놓고 언쟁을 벌이더라. 얼마까지 올려야 하는지, 보증금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토론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학비, 식비, 주거비 등 3중고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이 잔뜩 뿔이 났다. 치솟는 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하숙과 자취집 주인들이 담합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 서울시내 5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하숙비담합해결을위한공동제소추진위원회는 24일 이화여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지역 대다수 하숙집이 일제히 하숙비를 올리고 있는데다 많은 하숙생들이 담합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숙집의 불법담합에 의한 피해사례를 수집,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하숙집 보증금도 담합의 결과라고 성토했다. 하숙집은 보통 무보증금의 월세 형태. 하지만 보증금 중 일부를 매달 하숙비로 빼가거나 일정 기간 후 돌려주는 방식을 취하는 하숙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박종찬(25ㆍ성균관대 경제4)씨는 "2005년 입학 후 처음 하숙을 했을 때는 보증금을 받는 곳이 전혀 없었는데 제대 후 복학하고 나니 보증금을 받지 않는 하숙집이 없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인근에서 하숙을 하는 최모(24)씨도 "지난해 주인이 '보증금을 받아야겠다. 안 그러면 다른 하숙집 주인에게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 했다.
보증금이 생기면서 분쟁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김모(21ㆍ성균관대 신문방송3)씨는 "하숙비가 너무 비싸고 생활도 불편해 8개월 만에 나왔다"며 "주인이 남은 보증금 4개월치(40만원)를 돌려줄 수 없다고 해 언쟁을 벌인 끝에 20만원만 받고 나왔다"고 언짢아했다.
과거 아파트 부녀회가 아파트 시세를 조종한 것처럼 하숙비 담합과정에 이를 주도하는 리더가 있다고 한다. 몇 군데의 하숙집을 운영하는 기업형 주인이 주변 하숙비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고려대에 재학중인 정모(22)씨는 "학교 근처 하숙집 주인 중에 소위 '우두머리'가 있어 이들의 결정에 따라 가격이 대부분 결정된다는 얘기를 최근 들었다. 이들이 올리면 다들 따라서 올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하숙비 갈등이 심해지면서 학생들 사이에는 부식 불만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김치 콩자반 등 기본 반찬 외에 제육볶음 등 특식이 나오는 횟수가 대부분 하숙집에서 줄어들고 있다"며 부식 담합까지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고려대 근처에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는 A(58)씨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니 우리도 방값을 올리는 등 대책을 찾아야 한다"며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 의논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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