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 구제역 백신 접종에 年1000억원 쓰면서…
"아이들이 소ㆍ돼지 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지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최근 구제역 파문으로 소ㆍ돼지에 접종하는 백신 비용이 한해 1,000억원 가량 든다는 보도를 보고 기가 막혔다고 했다. 영ㆍ유아 필수예방접종 비용을 전액 국가가 지원하는 데는 그 절반인 한해 597억원이면 충분한데도 벌써 6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21일 질병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국회 예산안을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하는 과정에서 해당 예산이 삭감된 채 통과됐다. 질병관리본부가 올린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삭감해 국회에 넘겼고 국회에서 다시 넣었지만, 최종적으로 빠뜨린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예산안을 제출했으나 좌절된 것이) 지난해까지 5수였고, 올해 6수째"라고 했다.
'0~12세의 모든 국가필수예방접종 비용(민간 병ㆍ의원 포함)을 국가에서 부담하겠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필수예방접종은 8종(12세까지 총 22회)으로 민간 병ㆍ의원에서 접종을 받으면 매번 4~5만원씩 지불해야 한다. 경제형편이 웬만한 가정이라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전국 253개 보건소에서 무료 접종을 받을 수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보건소 접종 비율은 대략 45~55% 수준이다.
일부 지자체와 계약한 민간병원(전국 5,264개)에서는 백신비(전체 비용의 약 30%)만 무료이고, 1만5,000~1만6,000원 가량의 접종비(행위비)는 개인이 내야 한다. 그나마 지자체와 계약하지 않고 예방접종을 하는 민간 병원의 규모와 접종비는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전국 253개 시ㆍ군ㆍ구(보건소 관할 기준) 중에 지자체 예산으로 접종비를 전액 지원하는 곳은 23곳, 일부 지원하는 곳은 52곳. 주로 수도권의 재정형편이 나은 지자체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 178개 지자체 거주자는 순전히 정부에서 지원하는 백신비만 받는다.
때문에 경제적 형편 등으로 인해 접종을 제때 받지 못해 감염되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정부는 정확한 실태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한국의 영ㆍ유아 필수예방접종률은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장 수준(95%)에 크게 못 미친다는 통계가 있지만, 2008년 용역을 의뢰해 표본 설문조사를 한 수치일 뿐 실상이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 필수접종에 속하는 홍역 발병은 2006년 28건에서 2010년 110건, 백일해는 17건에서 27건, 수두는 1만1,027건에서 2만4,435건으로 급증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접종비를 일부라도 지원해야 정부와 계약을 하는 민간병원이 늘어나서 접종비율이 드러나게 되고, 미접종 영ㆍ유아의 규모가 드러나야 보건소를 통해 집중관리가 가능한데 원천적으로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15일 영ㆍ유아 예방접종 전액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또 한번 밝혔다. 하지만 당장 이번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겠다는 건지, 연내에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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