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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의 양두구육(羊頭狗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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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의 양두구육(羊頭狗肉)

입력
2011.02.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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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가까이 농성 중인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소식을 들었다. 이건 당연히 홍익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도 몇 해 전 거의 같은 사건이 일어났고, 몇몇 분의 수고 끝에 문제가 어렵사리 수습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일어난 사건이지만 방법은 동일하다. 용역회사는 "계약기간이 다 찼으니, 당신들은 이제 해고"라고 말하고, 대학은 "당신들은 용역회사에 고용된 직원이니 고용 여부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다"라고 둘러댄다. 대학의 변명을 들으니, 맹자 말씀이 생각난다.

건학 이념과 동떨어진 행태

맹자는 올바른 정치를 팽개치고 무시로 백성을 부역에 동원하고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굶어 죽게 만든 양혜왕에게 "당신은 당신이 백성들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당신의 말은 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고는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창이 찔러 죽인 것이다'라고 변명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어떤가. 꼭 같은 말이 아닌가.

이렇게 남의 손에 귀찮은 일을 맡기는 것은 참으로 신통방통한, '간편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이런 좋은 방법이 어디 대학에만 적용되겠는가? 한국 사회에는 이 방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분들이 허다할 것이다. 한데, 최저생계비보다 더 낮은 임금을 주며 부리다가 노조를 만들어 항의하면, 용역회사를 핑계 대며 내 알 바 아니라고 해고해 버리는 짓거리는 그 누구도 해서 안 된다. 대학은 더더욱 해서 안 된다.

왜냐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향해 발언해야 할 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건학이념과 교훈을 떠올려 보라. 정의와, 진리와, 자유와, 봉사와, 평화-여기에 홍익(弘益)도 더할 수 있다-를 내세우지 않는 대학이 있는가? 이런 거룩한 이념과 교훈을 실천하고자 노력했기에 대학은 사회의 다른 조직과 구분되고, 또 그에 걸맞은 존중을 받아 왔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대학 꼴을 보자면 양두구육(羊頭狗肉)이 따로 없다.

내친 김에 '홍익(弘益)'이란 말을 따져보자. '홍익'은 첫머리 '고조선'에 나오는 말이다. 환인은 아들 환웅이 사람 사는 아랫동네에 마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랫동네를 직접 굽어보니, 잘 다스리면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의 원문이 바로 '홍익 인간'이다.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만든다니, 청소노동자 또한 그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국민들이 괜찮은 대학으로 알고 있는 대학들은 대부분 서울 소재의 서열 높은 몇몇 대학이다. 이 대학들은 언필칭 진리 자유 봉사 평등 평화 민족 등에 요즘은 글로벌까지 내세우고 있지만, 하는 일은 그와 전혀 상관없다. 못 믿겠거든 대학이 내부의 약자들, 예컨대 시간강사와 청소노동자를 어떻게 쥐어짜고 있는지 보시라.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대학은 물론이고, 대학에 관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국가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건만 어찌 된 일인지 모두 오불관언이다.

대학 정책 맡은 국가에도 책임

대학에 바란다. 그리고 나라에도 바란다. 제발 이제 솔직해지시기 바란다. 모쪼록 스스로 대한민국의 소수 특권계급을 재생산하는 지배기구일 뿐이라고 털어놓고, 마음에도 없는, 지키지도 못할,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 거룩한 어휘들을 건학이념과 교훈에서 삭제하시기 바란다. 그 대신 현실적인 어휘로 바꾸어 주었으면 한다.

진리 대신 거짓을, 자유 대신 억압을, 봉사 대신 지배를, 평등 대신 차별을, 평화 대신 분쟁을, 홍익 대신 이기주의를 내거시기 바란다. 또 덧붙일 더 좋은 다른 말은 없냐고? 왜 없겠는가? 탐욕, 돈벌이 등도 권한다. 그런 어휘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가 아니겠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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