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당시 친 서방 성향의 왕정을 무혈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권좌에 오른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최근 반정부시위로 위기를 맞기 전까지 42년간 철옹성처럼 권력을 유지했다. 77년 사회주의,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한 그는 인민 직접민주주의라는 독특한 체체 구축을 명분으로 의회제도와 헌법을 폐지, 전제 권력을 강화했다.
통치기간 중 반미 무장단체 지원과 테러로 서방국가와 줄곧 대립각을 세웠다. 리비아는 1986년 4월 서베를린 미군출입 나이트클럽에 폭탄테러를 감행했고, 이에 미군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국가원수 관저를 폭격, 입양한 딸 한나(당시 4세)가 숨졌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는 등 서방과의 화해무드에 돌입하는가 했지만, 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서방 아랍국가를 비난하는 등 외교분쟁을 겪어왔다.
카다피의 사실상 후계자로 알려진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은 20일 리비아 국영TV에 나와 민주적인 법률개정 약속과 함께 폭력시위 중단을 요구하는 중대발표를 통해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강력한 후계 경쟁자인 4남 무타심과 7남 카미스가 강경파의 지지를 받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서방에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 정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영어에도 능통하고 리비아의 대외적 대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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