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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16·끝> 사진기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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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16·끝> 사진기자의 삶

입력
2011.02.2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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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8일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월간 '사진예술'이 주최한 사진인 신년 하례회에 다녀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진과 함께 평생을 보낸 이들이 많이 참석해 이 자리에서 여러 동료와 선후배들을 만났다. 지난 해 처음 사진기자로서 인촌상을 수상한 91세의 이명동 선배. 참석자로는 최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다.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내고 사진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윤주영 전 장관의 모습도 보였다. 모임을 주선한 김녕만 사진예술 대표의 인사말이 기억난다. "사진가들은 장수(長壽)합니다. 손에 카메라를 들고 고민하며 항시 무엇을 찍을까 생각하며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늙을 틈이 없습니다.

이명동 선배님이 인촌상을 수상하시고 94세의 이형록 선생님이 개인전을 여시는 등 여러 선배님들이 우리 사진가의 정년을 90세 이상으로 확 끌어올려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렇게 늘 할 일이 있는 우리 사진가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김대표의 말에 윤 전장관이 "나도 올해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소"라고 화답해 모든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니 나도 어느덧 꽤 대접받는 나이가 됐다. 80하고도 중반을 넘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어깨에는 카메라가 매달려 있다. 그리고 현장으로 달려 간다. 물론 요즈음 내가 찾는 현장은 신문에 실리는 역사의 기록 현장은 아니다. 카메라를 들며 내가 처음 시작했던 전통문화의 숨결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나를 찾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걸어오고 기록한 일들이 격동의 한국현대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제 치하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해방과 함께 6ㆍ25를 맞았으며 지리산 밑자락에서 빨치산을 토벌하는 현장을 문관으로서 카메라에 기록했다. 이 때 만난 젊은 처녀와의 인연으로 굿판을 구경하게 됐고 이후 한국의 춤과 전통 예인들의 삶과 인생을 지금까지 카메라에 담고 있다.

풍경 사진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주제로 한 소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하다가 신문사에 들어갔고 한국일보, 조선일보, 세계일보를 거치며 직책을 갖지 않은 현장 기자로 뛰며 역사의 순간들도 기록해 왔다.

치기 어렸던 시절, 해외 사진 콘테스트에서 수상을 하며 내 사진에 대한 평가가 통했다고 자부했던 때가 있었고 '독침'이라 불리며 특종의 순간을 쫓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지인들이 몇 번의 전시회를 열어 주었고 사진집을 포함해 춤과 전통에 관한 몇 권의 책도 출간할 수 있었다. 2006년 눈빛 출판사를 통해 발행된 <정범태 사진집-카메라와 함께 한 반세기 1950~2000> 은 리얼리즘 사진들과 신문사에 일하며 취재한 사진들을 모은 작품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판소리> <경서도 명인 명창> <한국의 명무> <춤과 그 사람-전 10권> <우리가 알아야 할 예인 100사람> <한국 춤 100년> <명인 명창> 등 춤과 예인에 관한 많은 책들은 지금도 국악 연구에 활용되고 인정받는 소중한 문화 유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마울 따름이고 보람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40년 넘게 몸담은 신문사 사진기자를 떠난 지15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새벽이면 일어나 열정적인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는 체력이 달리지만 해마다 정초가 되면 지리산에 오르곤 했다. 배낭 하나 짊어 매고 밤차로 지리산 기슭에 도착하면 새벽 4시다.

이 때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해 1km쯤 올라가면 낯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를 나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다들 너무나 순수한 낯빛이다.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는 산을 왜 오르나?' 하는 케케묵은 물음을 뒤로 하고 정상에 올라 잠시 구름을 쳐다보면 마치 신선이 된듯하다. 별안간 구름이 몰려와 사방이 안개에 묻히면 조용히 지난 삶과 인생을 되돌아본다. 현재 나의 위치와 건강과 세상살이의 윤회, 그리고 남은 여생에 대한 다짐을 하고 저자 거리로 내려온다.

오를 때도 중요하지만 내려올 때가 더 중요하다. 내 삶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평생 모은 건 별로 없지만 연희동의 집 한 채와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있는 아들, 딸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카메라를 멜 수 있는 건강한 어깨가 남아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칼 없는 무사는 무사가 아니듯이 카메라가 없는 정범태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지면을 빌어 기자의 길을,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학들에게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정직하게 현장에 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역사가 변화하고 사회가 발전한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도 더 가져줬으면 말할 나위 없겠다. 지난 4개월 동안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기록에 관심을 가져준 모든 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준 한국일보사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다시 찾아 뵐 것을 약속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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