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투자자들에 기업 인수ㆍ합병(M&A)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연 스팩(SPACㆍ기업인수목적회사)이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초창기에는 투자주의 경보가 울릴 정도로 과열 양상을 빚기도 했지만, 딱히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지금은 스팩에 대한 관심이 많이 식은 상태. 스팩 도입 1년을 점검해 본다.
숨죽이고 있는 스팩
지난해 3월3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국내 스팩 1호 대우증권스팩을 시작으로, 20일 현재 상장된 스팩은 모두 22개에 달한다. 웬만한 증권사라면 너나없이 모두 스팩에 뛰어들었다.
스팩은 우량 장외기업을 인수ㆍ합병(M&A)해서 우회 상장시킴으로써 수익을 내는 서류상의 회사. 초우량 기업을 유리한 조건으로 M&A에 성공하기만 하면 상장기업에 대한 주식투자보다 훨씬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반면 M&A에 실패하면 투자 수익을 내기 어렵다. 그러나 도입 1년이 지나도록 M&A와 관련해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이러니 투자자들의 실망도 커지면서 스팩의 주가도 부진하다. 현재 상장된 22개 스팩 가운데, 18일 현재 공모가격 대비 주가가 오른 종목은 대우증권스팩, 미래에셋스팩, 현대증권스팩, 신영스팩, 대신증권그로쓰스팩 등 5개뿐. 나머지는 대부분 공모가보다 3~5% 밑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팩은 실제 M&A가 가시화하기 전에는 주가가 상승할 이유가 전혀 없고 또 주가가 비싸져 시가총액이 커지면 M&A 대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공모가 부근에서 움직이는 흐름이 정상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입 초창기 '이상 과열' 속에 미래에셋스팩이 공모가 대비 2.5배까지 주가가 치솟는 등 고점과 비교하면 현재 주가는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스팩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실제 상장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지난 17~18일 일반 공모청약을 추진했던 리딩밸류1호스팩은 청약일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공모를 철회했다.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예측 결과가 저조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M&A 환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비상장사들의 경우 합병시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기존보다 불리한 방식을 적용 받게 되면서, 스팩의 영업 환경이 M&A의 결실을 맺기에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스팩업계는 비상장사 합병 때 기업의 현재가치를 구하기 위해 쓰는 할인율(자본환원율)을 기존의 약 5%에서 최소 10%로 올린 것이 M&A 여건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비상장사의 입장에선 종전에 비해 기업가치를 더 낮게 평가받게 됐기 때문에, 스팩을 통한 우회상장에 매력을 덜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부터 증시 활황에 힘입어 기업공개(IPO)시장이 호황인 점, 또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스팩을 설립하면서 공급과잉을 빚고 있는 점도 스팩 활동에는 불리하다. IPO가 잘 되는 마당에 비상장기업들이 굳이 우회상장을 선택할 필요가 없고, 상장된 스팩들이 대부분 녹색산업 등 신성장동력 관련 기업만을 합병대상으로 물색하다 보니 과열 경쟁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환원율 이슈처럼 예상치 못한 장애물도 생겼지만, 스팩은 상장 3년 내에 합병절차를 완전히 마무리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스팩업계도 M&A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라며 "경쟁 속에서 옥석도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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