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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 '진보'이념 뒤에 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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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 '진보'이념 뒤에 숨기

입력
2011.02.2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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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우충좌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우파와 비판적으로 부딪치는 일이 필요하지만, 왼쪽으로도 부딪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진보진영에 대해 쓴 소리를 많이 했는데, 그것은 필요한 일이면서도 개인적으로 아주 피곤한 일이었다. 한나라당 지지자가 전혀 아니면서, 진보 쪽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위 주류 진보 쪽에서 쓴 소리를 잘 듣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진보진영도 많은 점에서 경직된 조직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경향이 크다. 오늘 마지막 쓴 소리다.

명예ㆍ권력 위해 진부해진 '진보'

최근 '진보가 집권해야 한다'는 구호를 내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모든 구호에서, '진보'라는 말은 극심한 오해와 왜곡을 조장하고 있다.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진보라기보다는 중도좌파 혹은 '리버럴(liberal)'에 가깝다. 그런데 그들은 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진보'라 자칭할까? 일종의 '진보 인플레이션'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보'라는 이념 뒤에 숨어서,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적 플레이를 하는 듯하다. '진보'는 진부해진다.

최근 조국 서울대 교수는 '진보 부흥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진보'이념을 내세워 부흥회를 하는 것이 정말 진보를 살리는 길일까? 대형 교회들이 세를 불리는 방식과 흡사하지 않은가?

나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주지 못하는 현 정부와 한나라당이 정치적 심판을 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진보가 집권해야 한다'면서 진보의 이념 뒤에 숨는 일은 떳떳하지 못하다. 정치적인 행위를 하려면,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걸면 된다. 진보적 실천은 좋은 것이지만, '진보'이념을 빌려 정치적 세 몰이를 하는 건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정치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식인은 아무리 좋게 보이는 이념이라도, 그 뒤에 숨는 건 의심스럽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게 좋다. 안전한 이념 뒤에 숨어서 정치를 하거나 지식인 역할을 하는 일은 신의 이름을 빌려 대형교회를 짓는 일과 비슷하다.

아쉽게도 언론이 이 혼란을 조장한다. 극우나 보수가 아니면 '진보'라고 통칭하는 일을 모든 언론이 당연하게 생각한다. 진보 쪽 언론들도 보수언론 못지않다. 또 민주당도 '진보'라는 색으로 과도한 바디페인팅을 하고 있다. 정치적인 행위는 구태의연하게 하는 사람들이 정책에만 진보색깔을 입히는 얄팍한 전술을 남용한다.

거꾸로 '진보'를 너무 정통적으로 독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ㆍ윤리적 권위를 내세운다. 교육경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며, 보수나 자유주의자와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리적으로 충실한 좌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윤리와 정치를 같이 보는 건 환상일 수 있다. 근대 이후 정치는 윤리에서 멀어졌다. 정치가는 다수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철저하게 자신의 권력욕을 따른다.

'리버럴'과 차별하며 연대해야

솔직하게 말하면, 진보의 다수는 실생활에서 보수나 리버럴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진보도 보수처럼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려고 한다, 다만 진보의식을 가지길 바란다"는 말은 진보의 애매함을 잘 말해준다. 한국 진보의 가방 끈은 세계적으로 길고, 여러 형태의 강남좌파가 늘어난다. 그것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고학력 진보와 리버럴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는 한편으로 진부하게 부풀려지고, 다른 한편으론 소수에 의해 독점된다. 역설적 상황이다. 진보와 리버럴이 갈라서야 한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차이는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유지하되, 정치적으로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모습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부함과 독단이 꼬일 것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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