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GS 회장이 제33대 전국경제인연합회장에 추대된 뒤 처음 나온 전경련의 목소리는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지수 평가에서 기준을 좀 더 완화하고, 기업별 순위는 공개하지 않는 등 대기업 입장이 충분하게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동반성장지수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경련은 21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대한건설협회, 한국조선협회, 한국철강협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협회와 함께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정운찬 전 총리)에 '경제계의 동반성장지수 개선의견 보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보고서의 골자는 위원회가 추진중인 동반성장지수가 대기업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전경련이 동반성장지수 평가 대상인 주요 기업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동반성장지수 제정 과정에 기업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86%나 됐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먼저 동반성장지수 평가의 골자가 되는 공정거래협약 평가기준을 이행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 평가 대상 기업의 30% 이상이 우수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정거래협약 평가를 받은 대기업이 현재 95곳인데도 최우수 평가를 받은 곳은 3개사에 불과할 정도로 너무 엄격하다는 것. 또 자금지원 평가 항목도 과도하다는 게 재계 의견이다. 2009년 상위 83개 기업의 동반성장 지원 실적이 2조7,000억원인데 앞으로는 상위 5개 기업의 지원 실적만으로도 2조8,500억원은 되어야만 최고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경제계는 나아가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에서 기업별 순위 공개는 지양하고, 등급별로 평가한 후 우수 기업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전경련은 이어 동반성장 중소기업 체감도 평가에 '물량공급의 안정성', '공급가격 조정수준의 합리성' 등 수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요구하는 항목은 제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동반성장위는 모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뿐 아니라 모기업으로부터 완제품을 구매하는 수요 중소기업을 상대로도 평가하겠다고 하는데, 수요 중소기업은 동반성장으로 접근할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2008년 전 세계적인 원자재가 급등 당시 수요 중소기업과의 부담 경감을 위해 A사에서 중국 B사보다 품질이 뛰어난 강판을 30%나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했는데도 유통 대리점에서 중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 폭리를 취했던 사례를 들면서 시장이 교란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동반성장지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의견이다. 먼저 평가 대상 기업의 30% 이상은 '우수' 이상의 평가를 받도록 하자는 제안은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자동차 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C사 관계자는 "시험을 본 뒤 성적이 안 나오면 성적을 조작해 30% 이상에겐 80점을 주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기업별 순위를 공개하지 말자는 것에 대해서도 "공개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우려다. 체감도 평가에 수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요구해선 안 된다며 제시된 유통 대리점 사례도 극히 일부의 모습을 전체인 양 확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나아가 전경련이 경제 관련 7단체 의견을 모으며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기업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되고 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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