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군이 떠났으니 힘이 빠질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장수만 방위사업청장이 함바집 비리사건으로 사퇴하면서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방위산업(방산) 개혁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만큼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수장을 잃은 방위사업청(방사청)의 개혁 드라이브가 무뎌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장 전 청장은 지난해 8월 부임하면서 방산개혁의 칼을 휘둘렀다. 방사청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주요 방산업체를 모두 찾아 다니며 실태를 파악했고, 방사청의 부정적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해 과장급 이상 간부 절반을 바꾸는 물갈이도 했다. 방산업체 관계자들은 “꼬치꼬치 캐묻고 다그치는 게 마치 저승사자 같더라”며 불만을 터뜨렸지만 군 안팎에서는 “이번에는 뭔가 제대로 바뀔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다.
방산개혁의 핵심은 돈과 품질, 즉 원가검증과 성능평가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원가검증과 관련, 무기도입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방사청은 지난 달 40여명으로 구성된 원가회계검증단을 발족했다. 방사청과 직접 계약을 맺는 방산업체는 물론 부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까지 모두 회계내역을 샅샅이 조사해 가격 부풀리기를 방지해 나갈 방침이다.
다만, 근거법률인 원가부정방지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원가검증을 행정처분으로 할 수도 있지만 법률보다는 구속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법안에는 3번 이상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업계에서 퇴출시키는 삼진아웃제와 같이 강력한 조치도 포함돼 있다.
방사청 관계자는 “정권의 실세로 통했던 장 전 청장이 강력하게 법 통과를 주장하면서 의원들을 설득해 온 것도 그 때문”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반면,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도 법안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고 있어 방사청장이 누구인가는 별로 상관없다”며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이와 달리, 성능평가는 군 당국과 국방기술품질원 국방과학연구소 등 여러 기관이 연관돼 있다. 국산 명품무기로 손꼽혔던 K-21장갑차와 K-11복합소총 등이 지난해 줄줄이 불량으로 드러나 개선이 시급하지만 방사청장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바꾸기 힘든 구조다.
군 관계자는 “무기검증 체계는 전반적으로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방사청장 교체가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장 전 청장이 독선적이지만 카리스마 있게 개혁에 앞장섰기 때문에 아무래도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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