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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이 폭력을 이긴다

입력
2011.02.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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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한 폭력은 군사정부와 신군부 시대다. 그 폭력성을 확연히 드러낸 사건은 대법원 판결문이 나오자마자 그 다음날로 사형을 집행한 인혁당 사건과 광주에서의 학살이다. 이때의 경험에 미루어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본다.

첫째, 폭력정치는 과거의 역사를 잊는 일이다. 예를 들면 군사정부는 4.19를 잊었다. 4.19날 지금과 같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사람들이 결코 묘소를 참배하지 않았다.

둘째, 폭력은 수(數)에 의지한다.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이효상이라는 교수가 동향 사람을 밀어주자고 말했다.

셋째, 본말을 전도시킨다. 군사정부는 산업화에 성공한 것을 내세워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국민이 이룩한 근대화를 자신들의 업적으로 호도했다.

이런 특징은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여야 모두 망각한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부는 2006년 지방선거의 대패 원인을 고치지 못하고 있던 상대 정당의 망각 상태를 틈타 대선에서 압승했다. 이 요행을 이명박 정부는 망각하고 자신의 당이 고유의 공이라도 있어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에 의해 내쫓긴 총리와 장관을 다른 관직을 주어 TV에 얼굴을 비추는 망각증을 보인다.

한편 야당은 집권시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과격했고 재산권을 존중하지 않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중도 노선을 가는 것을 잊었다. 이 망각증을 고치지 못한 채 지난해 선거에서는 한 과격한 사람을 출마시켰다. 건망증이다.

둘째는 여야 모두 수에 의지한다. 여당은 툭하면 국회에서 수의 힘으로 밀어 붙인다. 야당도 수에 의지한다. 촛불시위 때 시위 군중의 앞자리에 야당 국회의원들이 나가 앉았던 일이다. 생각해 보자. 4.19 때 시위가 일어 난지 1주일 만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까지 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데모 군중 속에 그 당시의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정치인 이승만으로서는 자기를 반대하되 자기의 자리를 엿보지 않는 반대를 처음 겪었던 것이 4.19 시위였다.

촛불시위 때에 야당 지도자는 "우리는 정치인입니다. 이 촛불시위는 순수한 모임입니다. 유모차들까지 나왔으니까요. 이 데모가 성공하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들과 달리 우리 정치인들은 이득을 얻습니다. 그러니 우리 정치인들은 이 자리에 앉지 맙시다. 우리가 앉으면 촛불시위의 순수성이 망가져 결과적으로 촛불을 끄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국회의원들이 거리에 나앉는 것을 말렸어야 했다.

셋째는 본말전도 현상이다. 여당은 야당의 준비 부족으로 겨우 대권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인사말에서 다짐 했듯이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 본래 할 일이었다. 그런데 툭하면 군사정부의 업적인 산업화를 잇겠다고 말한다. 한편 야당은 자신의 본체인 김대중씨가 일찍이 주창한 대중경제와 4대국 보장론을 잊고 집권하고자 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정치에서 폭력을 극복하는 길은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국민을 억압하는 불의에 맞서는 경우에도 폭력을 앞세워 투쟁하는 것보다 정의를 말로 내세우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여야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말을 하고,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이 정치의 올바른 길이다. 폭력을 이기는 것은 말이다. 유권자는 정치인의 말이 생판 거짓말인 것도 쉽게 알지만, 망각증과 수에 의지함과 본말 전도를 잊지 않는다.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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