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이 부담스럽지 않았냐고요? 오히려 누에고치가 허물을 벗은 듯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지난 해 지방 순회공연을 끝내고 오는 26일 서울 공연을 재가동하는 뮤지컬 ‘메노페즈’에 ‘공주병’을 앓고 있는 한물 간 여배우 역(SS역)으로 출현하고 있는 가수 혜은이(55). 그는 무대에서 다시 관객과 만날 기대에 살짝 들떠 있는 듯 보였다. 이 뮤지컬은 중년 여성이 느끼는 상실감을 주제로 한 코미디극으로, 메노페즈란 폐경기, 갱년기를 뜻한다.
극은 갱년기 및 폐경기를 맞은 네 명의 주연급 배우가 등장한다. 왕년의 스타 여배우(혜은이 분), 경제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삶의 허무를 느끼는 주부(이영자 분), 커리어우먼으로 바쁘게 살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 여성(홍지민 분), 전형적인 전업주부(김숙 분) 등 이들 ‘아줌마’의 진솔한 이야기에 관객들은 뜨거운 성원을 보여왔다. 2005년부터 매년 두 달간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펼쳐진 이 뮤지컬은 근래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던 연강홀로서는 단비였다. 객석점유율은 평균 85%에 달했다.
주연급 가운데 실제 갱년기를 맞은 유일하고, 가수로서 1970~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혜은이의 캐스팅은 단연 화제였다. 그에게도 이 작품은 뮤지컬 데뷔작이다. “연기 춤 노래를 한꺼번에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온 대사처럼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가슴이 뛰는 것은 숨쉬는 사람이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스타 가수지만 춤 연기 등은 거의 해본 적이 없던 터라 고민도 컸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막을 올리기 전 한달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메노폐즈가 폐경기란 뜻인지도 모르고 참여해 후회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곧 죽도록 다이어트할 필요도 없고 얼굴 마사지 받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자유스럽게 연기하고 노래할 수 있는 이 작품만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백화점 속옷 할인 매장에서 물건을 놓고 싸우다 만난 세 중년 여성의 신세한탄에 관객은 웃고 웃는다.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들의 모습에서 관객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한 중년 여성 관람객은 “누구의 엄마라는 역할을 떠나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경쟁도 심하고 세상살이 참 힘들어졌죠. 남편과 자식들의 쳐진 어깨를 보면서 주부들도 덩달아 힘들어졌어요. 참는 걸 미덕으로 살아왔던 그들의 고민을 확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하며 희망을 찾아갔으면 해요.” 그의 환한 웃음에는 갱년기라는 말이 주는 울적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사진=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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