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권 지음/민음사 발행ㆍ124쪽ㆍ8,000원
"시는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신 없는 성당./외로움의 성전./…/시인은 1인 교주이자/그 자신이 1인 신도./ 시는 신이 없는 종교./그 속에서 독생(獨生)하는 언어."('은둔지' 중)
이런 시를 시집 첫 머리에 놓을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등단 후 40여년간 오롯이 삶의 비속성에 물들지 않고, 정신적 초월주의를 추구해 왔던 조정권(62) 시인이다. 197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후 높고 차갑고 청정한 정신의 세계를 펼쳐 왔던 그가 여덟 번째 시집 <고요로의 초대> 를 출간했다. <떠도는 몸들> 이후 6년 만의 시집이다. 떠도는> 고요로의>
50여편의 시가 실린 이 시집에서 시인은 세속의 삶으로부터 고립된, 아니 스스로 은거해서 시어 속에서 영혼을 고양시키는 언어의 순례자로 그려진다. 바로'독생'과 '시은(市隱ㆍ세속에서의 은둔)'의 삶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이 공간이 그에겐 세속의 때를 씻고, 고결한 세계로 들어가는 성전인 셈. 표제작 '고요의 초대'는 그 입문의 과정. "키를 꽂기 전 조그맣게 노크하셔야 합니다 적막이 옷매무새라도 고치고 마중 나올 수 있게/…/많은 집에 초대를 해봤지만 나는/ 문간에 서 있는 나를/하인처럼 정중하게 마중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난 게 아니라 도착한 거예요/추운 생명으로 왔지요./차가운 몸으로 왔지요."('살얼음에 대하여' 중)라는 구절처럼 그 곳은 얼음처럼 차갑지만 외려 그는 이 고요 속 불면을 고통이 아니라 신성함으로 받아들인다.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의 소박함을 알게 해 주는 시간/밤이 주는 휘황찬란한 축복은/불면./불면이야말로 내 안에서 살아왔던 산타클로스."('신성스러운 불면' 중)
세간의 소리와 훈기가 사라진 그곳은 어쩌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텅 빈 공간일 터. 시인은 바로 모든 것들이 혼절한 그 텅 빈 무(無)에서 경건하고 숭고한 어떤 경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아무런 뜻도 없는/말 한 송이는/성당이 없어도 되는 종교 같고/신앙이 없어도 꽃피는 마음 같고/…."('문안' 중)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조정권의 시에서 정신의 높이에 대한 지향은 정신의 새로운 윤리를 스스로 창조하기 위한 끝없는 자기 혁신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평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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