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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낡은 진공관 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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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낡은 진공관 앰프

입력
2011.02.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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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낡은 오디오가 있다. 오랜 인연을 나누고 있는 대안 스님에게 받은 선물이다. 낡아도 국산 진공관 오디오다. 은현리로 이사 올 때 처음 하는 시골생활이 적적할까 싶어 주신 선물이다. 왼쪽 스피커가 약간 찢어져 최대출력을 낼 수 어렵지만 지금까지 나에게 멋진 벗이다. 디지털 앰프는 전원을 켜면 즉시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진공관 앰프는 진공관에 불이 다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진공관에 불이 들어오면 마음 밑바닥부터 천천히 따뜻해진다. 나는 그 시간이 좋다. 은현리로 와서, 전업시인을 자처했기에 한 몇 년 두문(杜門)이라는 아호를 사용했다. 두문불출에서 따왔다. 저자 발걸음을 하지 않고 조용히 파묻혀 많은 시를 썼다. 그 기간 동안 낡은 진공관 앰프는 참 좋은 친구였다. 새벽에 눈을 뜨면 쇼팽을, 해질 무렵 불을 밝히지 않고 나윤선의 노래를 들었다. 화창엔 날엔 창문을 활짝 열고 마당에서 시를 읽거나 쓰며 나무와 풀꽃, 새들과 함께 베토벤을 들었다. 낡은 진공관 앰프는 지금도 내 은현리 주소와 함께 하고 있다. 봄이 오면 스피커도 바꾸고 앰프에 FM라디오를 추가해야겠다. 나는 낡은 진공관 앰프로 노래를 들으며 이란 시집을 썼다. 무릇 사람의 손때가 묻은 낡은 것을 함부로 버려서 안 된다. 낡은 것에는 아름다운 영혼이 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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