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 이제 그만 살고 싶구나. 딸아 미안하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다세대주택. 김모(55)씨는 유언이라도 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딸 이모(22)씨에게 전화했다. 이씨는 어머니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고 직감, 바로 119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김씨는 넥타이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김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서 딸을 죽이려 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하루 전인 12일 새벽 김씨는 술에 취해 딸과 말다툼을 하다 흉기로 옆구리를 찔렀다. 2개월 전 유일한 수입원인 주점을 닫은 후 술에 취해 있는 시간이 많았던 김씨가 이날 동네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딸에게 “돈을 아껴야 한다”고 말하다 다툼이 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함께 사용하던 신용카드가 한도초과로 정지됐기 때문이다. 김씨가 2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맏딸까지 집을 나간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다.
딸 이씨는 전치 4주의 상처를 입고 입원했지만 경찰에 “어머니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경찰은 자해 위험이 있다며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딸의 호소에 귀을 기울여 기각했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사정은 딱하지만 흉기로 사람을 찌른 점 때문에 수사는 해야 한다”며 김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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