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가 참 부지런해졌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월 100만원이 넘는 논술 강좌를 발견하고는 대입 논술시험을 폐지하는 정책을 급히 마련했다. 장관은 대학 총장들을 만나 논술시험 폐지를 요청하고, 그 대가로 재정지원사업에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한다. 여기에 '화답'하여 서울대는 수시에서 논술시험을 폐지하겠다고 하고, 일부 사립대학들도 논술 비중을 줄이겠다고 한다. 교과부의 노력으로 일시적으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고, 학부모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교과부의 논술폐지 정책은 교육학에서 말하는 '퀵 픽스'(quick fix)에 해당한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 해결책을 처방하기보다는 임시변통의 미봉책을 처방하는 걸 일컫는다. 물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퀵 픽스를 하고, 시간을 두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학에서 퀵 픽스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많은 경우 임시 방책인 퀵 픽스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술시험이 폐지되면 어떻게 될까? 변별력 없는 수능과 내신을 활용할 것을 종용하는 교과부와 원하는 학생을 뽑기 위해 본고사를 보겠다는 대학의 갈등과 절충 과정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논술시험이 안정적으로 정착해 왔다. 논술시험은 입시 자율권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강요된 논술시험 폐지로 인해 대학은 점점 깊은 고민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뭘 보고 학생을 뽑으라는 말인가. 입학사정관을 통해?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학생부를 보고 학생을 뽑으란 말인가? 대입 정책은 대학에 맡기고 손을 떼겠다는 대입 자율화를 대선 공약에서부터 되풀이한 정부에게 실제로 대입 자율화는 안중에 없는 것 같다.
논술시험이 폐지되면 대입 전형에서 수능과 면접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수준별 수능을 도입한다는 2014년 수능에서 어려운 수능이 현재 수능 수준으로 출제된다니, 논술시험을 치러온 대학 입장에서는 수능은 여전히 변별력이 약할 것이다. 따라서 각 대학은 면접을 '구술고사'로 바꾸고 이것의 비중을 높여서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또 학생들은 구술고사에 대비하기 위해 다시 강남의 학원에 몰릴 것이다. 그러면 교과부는 다시 재정지원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면서 구술고사 폐지 대학에 가산점을 주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해방 이후 지난 60년간 교과부가 반복해 온 '관치형' 문제 해법이 아닐 수 없다.
교과부가 관치형 문제풀이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글로벌 창의 인재를 육성한다면서 수능 70%의 교육방송 연계 출제로 전국 고교생들을 EBS에 매달리게 하는 정책, 고등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위해 서술형 평가를 확대한다면서 대입 논술시험을 폐지하려는 정책, 초‧중등학교의 자율화 정책을 강조하면서 대입 전형 요소 하나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하려는 정책. 퀵 픽스는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모순 속에서 국민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의 큰 그림을 이해할 수가 없으며 더 더욱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교과부가 대입 자율화라는 대의는 망각한 채, 사교육비 감축이라는 1차원적 사유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1차원적 사유에 집착하는 이가 주변인들을 불안하게 하듯, 정부의 논술시험 폐지 정책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각 대학이 논술시험 대신 무엇을 요구할까 벌써부터 걱정되기 때문이다.
김재춘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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