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수사 외압이었을까, 통상적인 업무처리 수준의 언급에 불과했던 걸까. 서울서부지검의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 도중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남기춘 당시 서부지검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공언했다는 보도(본보 18일자 1, 4면)와 관련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또한 지난달 남 전 지검장이 사표를 낸 것은 이 장관의 잇단 부적절한 수사지휘가 배경이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검찰 내부가 뒤숭숭하다.
법무부 핵심 관계자는 18일 "이 장관이 남 전 지검장을 지목해 인사 관련 발언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기소한 사건들이 무죄 판결이 많이 나거나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면 인사에 반영한다는 취지의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문제는 법무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선 검찰에서는 이 장관이 실제로 "남기춘을 빼겠다"는 발언을 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는 점이다. 설사 법무부 해명대로 이 장관이 일반론적 수준의 언급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남 전 지검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식의 해석인 것이다. 이는 남 전 지검장이 '먼지털기식 수사'라는 오명을 남긴 채 검찰을 떠난 것은 이 장관이 외풍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불만이 일선에 퍼져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남 전 지검장 퇴임 직전 일어났던 여러 가지 상황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올해 1월 들어 검찰 안팎에선 법무부가 남 전 지검장을 대검 형사부장으로 전보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당시 법무부 인사안이 김준규 검찰총장의 반대에 부닥쳤고, 이 과정에서 이 장관과 김 총장 사이에 불협화음이 났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다.
여기에 이 장관이 남 전 지검장의 서부지검장 및 울산지검장 재직 시절 부당하게 수사지휘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이 장관을 궁지로 몰고 있다. 서부지검 건은 이 장관이 법무부 간부를 통해 남 전 지검장에게 한화 재무책임자를 지낸 홍동옥 여천NCC 사장을 불구속 수사하라는 뜻을 전달했다는 의혹인데, 법무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한 바 있다.
뒤이어 나온 울산지검 의혹은 남 전 지검장이 지난해 3월 울산지역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 후보들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를 하던 중 법무부 간부가 전화를 걸어 "기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고 문의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실무 편의상 기소 시점을 하루만 미뤄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장관이 자꾸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놓고 검찰 내에서는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남 전 지검장을 동정하는 검찰 내부의 특정 세력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일련의 의혹 제기 배경에는 '한화 수사가 불구속 기소로 막을 내린 데에는 외압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는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무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한화 수사가 실패한 수사였다는 것은 명백한데, 왜 이 장관을 흔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 장관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이 부당한 수사지휘 논란에 휘말리게 된 근본 원인을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기수 역전 현상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직위상으로는 이 장관이 김 총장보다 서열이 높지만, 사법시험 기수로 보면 김 총장(21회)이 이 장관(22회)의 선배다. 한 검찰 간부는 "기수가 낮은 장관이 총장에게 툭 터놓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장관과 총장의 껄끄러운 관계가 법무부와 검찰의 잇단 불협화음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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