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환자들이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어제 항소심에서도 원고 패소했다. 1999년 처음 제기된 '담배 소송' 사실심이 원고 패소로 끝남으로써 앞으로 당분간 국내에서 담배회사의 폐암 유발 책임은 인정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어제 판결로 법원이 흡연의 폐암 유발 악영향을 부인하거나 담배회사에 일방적으로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은 금연운동 단체나 개인에게 위안이 될 만하다.
재판부는 "담배연기에 포함된 다양한 발암 물질이 직접 폐암을 발생시켰다는 과학적 증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KT&G가 담배 제조와 판매를 독점하고 원료 경작에도 관여한 점 등에 비추어 원고의 입증책임이 완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담배와 폐암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폐암이 바로 담배 때문에 생겼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했던 2007년 1월의 1심 판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어 "하루에 한 갑씩 폐암 진단 때까지 20년 이상 흡연했고, 흡연 관련성이 큰 편평세포암이나 소세포암 발병이 확인된 폐암 환자 4명에 대해서는 피고측 반증이 없는 한 흡연과 폐암의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흡연과 폐암의 구체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결코 작게 보기 어려운 인식의 변화다. 이에 대해 KT&G측은 적잖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입증책임의 완화나 전환은 공해소송 등에서 이미 정착되어 온 법원의 자세라는 점에서 특별한 논란을 부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재판부는 "KT&G 담배에 결함이 있거나 고의로 정보를 감추고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위법행위, 첨가제 투여나 니코틴 함량 조작을 통한 의존증 유지 등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최종적 불법행위 책임은 부인했다. 원고측이 KT&G의 고의적 위법행위나 보호의무 태만의 과실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왈가왈부할 건 없다.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각성과 담배회사의 도의적 책임을 일깨운 '담배 소송'의 상징적 성과를 되새기며 담담히 최종심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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