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게 여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1980년대부터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를 꾸준히 실시해 오고 있다. 지난 해까지 무려 11만7,000여 점에 달하는 해외의 우리문화재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쉽게 옮길 수 있거나 소장하기 쉬운 동산 문화재가 대부분이지만 그러나 이 11만7,000여 점이라는 숫자도 어떻게 보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많은 수의 우리문화재가 원인이야 어떻게 되었던 외국의 개인이나 공공기관인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소더비 등 국제경매를 통해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한편으로 프랑스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하여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물론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의 환수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외국에 나가있는 많은 우리문화재 가운데 첫 손가락을 꼽는다면 단연 '몽유도원도(夢遊挑源圖)'라 할 것이며 이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텐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이 몽유도원도가 일본에 있게 된 연유와 아울러 '몽유도원도'에 관한 모든 내용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안희준 교수의 역저 <안견과 몽유도원도> 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참고 된다. 안견과>
몽유도원도는 꿈의 낙원인 무릉도원에서 놀던, 즉 유토피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꿈을 꾼 주인공은 조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이다. 그는 1447년 4월20일 밤 꿈에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도원(桃園)을 보고 난 후 당시 최고의 화가인 안견(安堅)에게 설명해 3일 만에 완성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제목인 몽유도원도와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안평대군이 직접 쓰고 아울러 축하의 시를 한 수씩 읊은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싱크탱크였던 집현전 학사를 중심으로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 서거정 김종서 등 21명에 달하고 있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림의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개(李塏)가 쓴 <武溪精舍記(무계정사기)> 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내용 가운데 안평대군이 평소 이개(李塏)와 같이 대궐을 벗어나 산책하면서 이곳을 자신이 꿈에 본 도원과 비슷하다고 했다고 한다. "무계 즉 무릉도원 계곡은 안은 넓고 밖은 은밀하여 스스로 한 구역을 이루고 있는데 계곡물이 흐르고 골짜기 입구에 높이 떨어지는 폭포가 있어 이곳을 무계(武溪)"라고 했고 안평대군이 꿈에 본 도원의 모습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武溪精舍記(무계정사기)>
이 위치가 바로 지금의 세검정일대 부암동 계곡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329-4번지에는 없어진 무계정사 터가 있고 바위에 武溪洞(무계동)이라고 후대에 새겨놓은 글자가 남아있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의 이 몽유도원도는 상하 두 개의 두루마리로 표구되어있고 상권 8.5m, 하권 11.2m로 전체길이 19.7m에 이르며 폭 41㎝이다. 그림은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을 이용해 그렸고 폭 38.7cm, 길이 106.5㎝ 규모다. 언젠가는 우리 손에 돌아와야 할 문화유산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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