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서울서부지검의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 도중에 남기춘 당시 서부지검장을 인사 조치하겠다는 뜻을 법무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공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먼지털기식 수사' 논란이 일었던 한화그룹 수사에 이 장관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검찰 인사권을 가진 법무부 장관이 수사 외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비판과 함께 커다란 파장이 일 전망이다.
17일 복수의 법무부,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장관은 한화그룹 재무총책임자(CFO)를 지낸 홍동옥(62) 여천NCC 사장에 대해 서부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해 12월 이후 법무부 간부들과 함께 한 비공식 자리에서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남 전 지검장도 포함시켜 서부지검에서 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수 차례 했다.
당시는 검찰 정기인사가 예정돼 있던 때가 아니었으며,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의 개인 사정을 이유로 고등검사장급만 대상으로 한 비정기 인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따라서 비록 홍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한화그룹 수사가 정점을 향해 가던 무렵에 이 장관이 인사 교체를 공언하면서 사실상 수사의 예봉을 꺾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선 검찰청의 한 검사는 "재벌그룹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 갑자기 수사팀의 수장을 갈아치우겠다고 공언한다면 누구라도 수사 외압으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무부 간부가 당시 서부지검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홍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말라"며 "이 장관의 뜻"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도 전해져 '불법 수사 지휘' 논란도 일고 있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지휘ㆍ감독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남 전 지검장은 서부지검 간부로부터 이런 내용을 보고받은 뒤 "수사 지휘를 하려면 대검을 통해 공식 서면으로 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장관의 뜻과 달리 홍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강행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서부지검에 그러한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남 전 지검장은 지난달 28일 고검장급 인사 발표 직전에 전격 사의를 표명하고 검찰을 떠났다. 당시 남 전 지검장 교체 문제를 두고 이 장관과 김준규 검찰총장은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이번 이 장관 발언 파문을 계기로 법무부와 일선 검찰 사이에 본격적인 갈등 기류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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