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두 영화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현빈이 주연으로 출연했고, 사랑의 감정을 그리고 있다. 10일 개막한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만추'는 포럼 부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경쟁 부문)에도 나란히 진출했다. 개봉은 1주일 간격('만추'는 17일, '사랑한다…'는 24일)이다.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의 외면을 받아온 김태용 감독과 이윤기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눈에 띄는 차이도 있다. 고 이만희 감독의 1966년 동명원작에 새로운 색채를 입힌 '만추'는 55억원을 들여 미국 시애틀에서 촬영했다. 제작비 3억원의 '사랑한다…'는 경기 파주시의 한 주택 내부를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 '만추'가 두 남녀의 사흘간의 쓸쓸하면서도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반면, '사랑한다…'는 5년 동안 함께 산 젊은 부부의 이별을 담담히 묘사한다. 다음은 대중적이라 할 수 없지만 잘 만들어진 두 영화 관람을 위한 짧은 비교 안내서.
시애틀 vs 파주 출판단지
'만추'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7년째 복역하다 어머니 장례식을 맞아 특별 휴가를 나온 애나(탕웨이)와 누군가에게 쫓기는 남자 훈(현빈)의 사연을 전한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애나가 훈의 따스한 보살핌에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이 훈훈하면서도 안타깝다.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은 두 사람의 굴곡 많은 인생을 변주하는 공간이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바람 잘 날 없이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모습이 시애틀의 여러 풍경 속에 녹아든다. 두 사람이 수륙양용의 오리차를 타고 시애틀을 관광하고, 유령 상가를 뛰놀며 감정을 교환하는 과정이 섬세한 연출로 묘사된다.
'사랑한다…'는 파주 출판단지의 고급주택 내부 좁은 공간에서 두 남녀의 내밀한 감정을 담아낸다. 다른 남자에게 떠나겠다는 아내(임수정)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군말 없이 보내야 하는 남편(현빈)의 어색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미련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별을 결심해 짐을 싸고, 짐을 꾸려주는 두 인물의 내면은 집 이곳 저곳을 채운 두 사람의 물건들처럼 복잡다단하다. 두 사람은 낡은 파스타 요리책을 보며 정다웠던 한 때를 떠올리고, 먼지 낀 남자의 건축 도면을 보며 옛 꿈을 반추한다. 새로운 사랑과 출발에 마음이 설레면서도 시간이 쌓아둔 감정에 흔들리는 그녀, 여자의 마음을 존중해 화 한 번 제대로 못 내는 안타깝기만 그의 모습이 농밀한 묘사로 전달된다.
"하오, 하이" vs "다 잘될 거야"
'만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애나가 자신의 아픈 과거를 훈에게 고백하는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어요" "저는 내일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등 애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면 훈은 중국어 "하오"(좋다)와 "하이"(나쁘다)로만 응대한다.
한 여자의 상처를 헤집지 않으며 그녀의 삶을 수긍하고 이해하는 듯한 훈의 짧은 반응은 호감 수준에서 머뭇거리던 두 사람이 소통에 이르도록 한다. 여자들에게 몸을 팔며 거친 인생을 살아온 훈의 간단치 않은 과거까지 가늠케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훈이 다시 나타날지 자신할 수 없으면서도 애나가 미소 속에 훈을 기다리는 이유이며 터프하면서도 훈훈한 현빈의 매력이 제대로 반영된 장면이기도 하다.
'사랑한다…'의 남자는 입버릇처럼 "잘 될 거야"라고 말한다. 아내가 떠난다 해도, 자신이 입게 될 상처를 걱정하는 아내의 말에도 그는 "잘 될 거야"를 읊조린다.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체념과 미련 사이를 오가는 남자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해낸 이 대사는 부드러운 남자 현빈의 매력을 부각시킨다. 비가 하염없이 오는 와중에 두 사람이 마지막 저녁으로 파스타를 준비한 뒤 여자가 중얼거리는 말도 "걱정 마, 잘 될 거야." 사랑하기에 떠나고, 보내는 신세대 부부의 이별식을 '사랑한다…'는 그렇게 정갈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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