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가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오순도순 모여 사는 전남 강진군 병영면 남삼인리마을. 한정녀(92) 할머니는 열여덟 나이에 이 마을에 시집왔다. 남편과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자식이 없었다는 것. 한 할머니가 쉰아홉 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무엇보다 제사 지내기가 막막하고 서글펐다. 그러나 한 할머니의 딱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한 할머니 대신 매년 음력 2월9일 마을 회관에 모여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벌써 33년째이다.
한 할머니는 아흔이 넘어서면서 무언가 마을에 보답을 하고 생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할머니는 지난 3일 문용윤(64) 이장댁을 찾았다. 마을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3,000만원 짜리 통장을 불쑥 내놓았다. 산에 다니며 캔 약초와 밭을 일구어 수확한 오이, 호박, 깨 등을 시장에 팔아 모은 돈이다. 수중에 10만원만 내놓고 모두 문 이장에게 내주었다. "나 대신 매년 남편 제사를 지내주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 얼마 안 되지만 마을을 위해 남길 수 있어 천만 다행이야." 귀가 잘 안 들이는 한 할머니는 "다행이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
이 마을에는 한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다닌 주민들이 여럿 있었다. 누구네 아들이 서울로 대학 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면서도 학비를 보탰다. 10년 전부터는 병영중학교와 병영정보과학고에 돈 없는 학생들에게 주라고 장학금도 내놓았다. 문 이장은 "자식이 없어서 그랬는지 학교 다니는 애들을 보면 꼭 도와주고 싶어했다"며 "마을 사람들을 다 자식처럼, 마을 아이들이 다 손주들처럼 생각하며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문 이장은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며 세상을 떠난 한 할머니의 남편도 마을 사람들을 친가족처럼 생각한 건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1986년 이들 부부를 위해 마을회관 앞에 작은 비석을 세웠다. "농촌 인심이 도시처럼 삭막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마을만큼은 이들 부부가 했던 대로 서로 아끼며 살자는 취지였다"고 문 이장은 설명했다. 비석 덕분인지 마을 이웃간 정은 더 돈독해졌다고 한다.
한 할머니는 "적은 돈이라도 남길 수 있어 다행스럽고, 베푼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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