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진화가 눈부시다. 쌀만 먹으면 키가 크고, 살도 빠진다. 최근엔 술 끊는 쌀에 이어 당뇨 치료 쌀도 출시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오랜 투자와 연구의 결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기능성 쌀의 명암을 들여다 봤다.
명(明)-눈부신 변신
농촌진흥청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은 최근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기능성 쌀 '밀양263호' 개발에 성공했다. 흑미인 조생흑찰과 쌀눈이 큰 찹쌀을 인공교배해 쥐에게 실험한 결과, 밀양 263호를 먹은 쥐의 알코올 섭취가 전보다 50% 이상 감소했다.
이는 아미노산 계열의 대뇌 신경을 조절하는 물질 가바(GABA)성분이 일반미에 비해 9배나 많이 함유됐기 때문. 전혜경 식량과학원장은 "밀양 263호는 질병 치료 효과를 갖춘 일종의 '메디(Medi) 라이스'"라며 "안전성 평가, 임상 실험 등을 거쳐 2013년부터 일반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능성 쌀은 이뿐이 아니다. 쌀 시장개방과 국내 소비감소 등의 구조적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 다양한 품종을 개발했다. 2001년 처음 선보인 '영안벼'는 성장과 발육을 촉진하는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많이 함유돼 키 크는 벼로 통한다. '고아미2호'는 식이섬유가 많아 포만감을 느끼면서도 상당량이 체내에 흡수되지 않기에 살을 빼는 다이어트용 쌀이다.
비만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일반미와 고아미2호를 반반 섞어 한 달간 먹으면 중성지방 수치가 30%나 감소했다. 필수 아미노산 8종의 함량을 높인 '하이아미'는 보통 쌀보다 밥맛이 좋아 환자, 어린이, 노약자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쌀 산업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 신장병 당뇨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쌀 등 5개 품종을 2015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암(暗)-정책 실패인가 성장통인가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기능성 쌀은 품종 당 평균 3억8,000만원을 들여 7~8년씩 연구한 끝에 개발된다"며 "어떤 품종은 개발에만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들인 공에 비해 성과는 영 미진하다. 개발 초기 보였던 소비자들의 관심은 금세 식어버린다. 특정 성분을 강화하다 보니 밥맛이 일반미와 다르고 가격이 다소 비싼 이유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으로 본다. 박광호 한국농수산대학 식량작물학과 교수는 "굳이 쌀이 아니더라도 약이나 건강식품 등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말했다.
수요가 없으니 재배면적도 좀처럼 늘지 않는다. 농림수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기능성 쌀을 포함, 현재까지 개발한 특수미(전체 53개 품종)의 지난해 재배면적(3만6,048㏊)은 2005년(1만4,530㏊)에 비해 2.5배 증가했으나 아직 전체 재배면적(약 89만㏊)의 4%에 불과하다.
종자 보급 노력도 미진한 편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대량으로 증식해 보급할 경우 다른 종자와 섞일 수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소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산업화와 판로 개척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도 있다. 2001년 개발 직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설갱벼는 전분 사이 공간이 많아 균의 침투가 용이해 발효가 빠른 점에 착안, 몇 년 전부터 한 주류업체가 양조용으로 계약 재배해 산업화의 길을 텄다.
농진청은 지난해부터 전남 광양, 충남 홍성 등 10개 시군에 기능성 쌀 시범단지를 조성하며 변화를 모색 중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브랜드 개발뿐 아니라 일반미처럼 농협 등을 통한 유통망 확보, 소비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 강화 등의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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